우리나라가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첨단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창업, 중소기업 육성 등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EIT)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대기업 투자와 연구에만 의지하고 있어 국내 첨단기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항구 박사는 지난 25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8회 미래성장동력 오픈톡 릴레이`에서 AI와 자동차산업 미래에 대한 강연을 개최하고 “우리나라는 대기업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에 미래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며 “하지만 첨단기술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벤처기업, 중소기업, 학계 등과 협력을 통한 새로운 사업모델 구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내 첨단기술 연구는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됐다. 2013년 국내 2500대 연구개발(R&D) 업체에 등재된 국내 전자업체 연구개발 투자의 94.8%를 삼성전자가 점유했다. 2014년에는 94%로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삼성전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R&D 비용으로만 141억달러(약 16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현대차 역시 2014년 국내 자동차 R&D 투자비용 70%에 달하는 3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이 박사는 “대기업 위주 연구·투자는 빠른 성장이 가능하지만, 성장이 둔화되고 산업이 약세로 접어들 때 쉽게 붕괴될 수 있다”며 “미국 ICT 산업에서는 대기업 플랫폼 개발과 이를 기반으로 한 창업 중소기업 연구개발 투자가 활발히 진행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요성이 높아진 AI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자동차기업-ICT기업-대학` 협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AI 기술 개발을 위해 포드, 토요타, 폭스바겐, 삼성전자, 엔비디아, 퀄컴, 캘리포니아대학 등 산·학 협력을 통한 `딥드라이브(DeepDrive)` 컨소시엄이 구성했다. 컨소시엄은 대학에서 AI 관련 데이터를 연구하고, ICT 기업이 소프트웨어(SW), 통신기술 개발을 완료하면 자동차 업체가 실제 차량에 시험을 하는 구조다.
AI는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다양한 SW를 활용해야하는 복잡한 기술이다. 때문에 일반 중소·중견 기업은 쉽사리 접근하기 어렵다. 이들은 학계와 협업을 통해 관련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동생산·마케팅 등 제휴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이는 대기업 또는 글로벌 기업과 협력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이 박사는 강조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는 잠재력은 큰데 전략과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데,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과 학계 등 협력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협력은 첨단기술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고, 4차 산업혁명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종은 자동차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