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숙제로 쓰게 하는 일기. 일기는 왜 중요할까? 우리도 일기를 ‘쓰라고 쓰라고’ 말은 하면서 그 중요성은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일기 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일기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과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사고력이 성장하고, 매일 글을 쓰면서 창의력, 표현력, 문장력을 포함한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 또한, 그날의 일을 기록함으로써 하루를 되짚어보고 반성과 발전을 할 수 있다. 학교 선생님들은 일기 잘 쓰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성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기. 우리 아이는 1,2학년 때도 일기 쓰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일기 숙제가 밀리기도 하고, 밀린 것을 쓸라치면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지겨워하였다. 또 일기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나 뭐했지? 뭐 써야 돼?”라며 몇 번씩 물어보기 일쑤였다. 숙제가 있는 것을 아는 엄마로서 일기 숙제 했냐고 일일이 확인도 해야만 했다.
이제 아이는 3학년. 학교에서는 여전히 일기 숙제가 있다. 그런데 3학년이 된 후에는 일기 숙제를 받고도 단 한 번도 지겨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 뭐했지?”라고 물어보는 일조차 없이 척척 알아서 쓰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방에서 한참을 안 나오고 일기를 쓰곤 했다. 조금 신기해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요즘엔 왜 일기 뭐 써야 되는지 안 물어봐?” 아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 한 거 없어도 일기 쓸 수 있다고 선생님이 말씀 하셨어. 생각 한 거 써도 된다고.” 여기서 일단 큰 공감이 일어났다. 그리곤 아이의 일기장을 보았다. 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가 일기장에 써 놓은 것은……. ‘만화.’ 바로 만화였다.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인가!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즐겁게 꾸준히 일기를 쓰도록 하기 위해 만화라는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아이의 만화를 보니, 정성스럽게 그은 테두리가 눈에 띄었다. 말풍선과 그림을 통해서는 아이의 감정과 가장 좋아했던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만화를 그렸지만 그 날의 중요한 일을 깊이 생각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노력이 보였다. 선생님의 생각에 놀라면서도 한편 걱정이 돼 물어보았다. “맨날 만화로만 일기를 쓰면 어떻게?” 아이의 대답. “일주일에 한번만 만화로 할 수 있다고 하셨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기는 글쓰기 능력의 향상에 큰 목적이 있으므로 당연한 규칙이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아이가 내 휴대폰으로 창밖의 ‘개나리’ 사진을 마구 찍고 있었다. 그리곤 하는 말. “오늘 일기는 시로 써야겠어.” 나도 모르게 “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은 일기 쓰는 방법으로 만화, 시, 산문 이렇게 세 가지를 얘기해준 것이다. 단, 만화는 일주일에 한 번 씩만 쓸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 중 몇이나 스스로 ‘시’를 쓰고 싶어 할까. 아이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키워주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시를 읽거나 쓰는 것 이다. 시에는 다양한 표현이 많고 상상하는 내용을 함축적인 말로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깊은 사고력이 요구된다. 평소에 아이에게 ‘시’를 읽어 주고 싶어도 못해줬는데, 스스로 관심을 갖고 쓰겠다고 하니 흐뭇하다.
일기를 지겨워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표현하게 해보자. 만화도 좋고, 시도 좋고, 그림으로만 나타내 보는 것도 좋다. 다양한 방법으로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게 할 수 있다. 지겨워 보이는 일기 숙제도 좋아하면서 한다면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완연한 봄이 되었다. 세상은 노란색으로, 눈길 가는 곳마다 개나리가 봄 인사를 한다. 딸아이의 시를 보니 나도 여유를 가지고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따사로운 봄기운을 ‘온화스레’ 느낀다.
아이에게 얘기해보자. “우리 시 일기 쓸까? 만화 일기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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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칼럼니스트
제일기획에서 국내 및 해외 광고를 기획 하고, 삼성탈레스, 나이키코리아 광고팀장을 지냈다. ‘즐기는 육아’를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 『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매경출판)가 있다. [육아/교육 칼럼 블로그 m.blog.naver.com/inah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