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읍소는 현실이 됐다. 김무성 대표가 유세장마다 다니며 호소한 것이 “박근혜정부를 식물정부로 만들지 말아 달라”였다.
앞으로 차기 대선까지 1년 7개월여를 박근혜정부는 야당 눈치를 보면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향후 국정 운영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당장 개각 등 인적 쇄신 카드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기도 쉽지 않다. 정치권은 사실상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으로 인식하고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방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4일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총선 후유증 극복을 위해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교체 등 인적쇄신을 통해 국정 운영의 동력 회복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인물 검증 등 과정을 감안하면 시점은 5∼7월 사이로 예상된다.
하지만 청와대 개편과 달리 개각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개각은 현실적으로 20대 국회가 시작되고 원 구성이 마무리된 이후에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인사 청문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관 임명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인사청문회 관문은 넘기 힘든 벽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은 국회의장, 국회운영위원장 등 국회에서 입법 활동에 중요한 자리도 모두 내놓게 됐다. 국회의장은 국가 의전서열 2위직으로, 관례상 원내 제1당에서 맡는다. 임기는 전·후반기로 나눠 2년씩이다. 다수당이 단수 후보를 추천한 뒤 본회의에서는 추인하는 게 관행이다. 새누리당이 공천 과정에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여권 성향 당선인을 복당시키면 원내 제1당 지위를 회복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내부 경선-후보 추천-본회의 무기명 표결이라는 규정대로 가면 야당에 국회 의장 자리를 넘겨 줄 가능성이 높다.
확실하게 돌아선 민심은 무엇보다 큰 부담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선거 기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국회를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파 유세라는 야당 비난에도 경제 행보 명분으로 전국을 돌며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민심의 칼날은 새누리당을 향했다. 새누리당이 원내 제2당으로 밀린 반면에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제1, 3당으로 부상해 국회 과반을 차지했다.
총선 이후 드라이브를 걸려던 개혁 과제는 20대 국회 원 구성 전까지 표류하다가 추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논의된다 해도 정책 기조 전반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요구가 거셀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집권 여당이 16년 만에 의회 과반을 잃으면서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을 겪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중국 관찰자망도 평론에서 “한국 총선 결과는 임기를 1년 8개월 앞둔 박 대통령의 정국 운영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국민의당과의 정책 연대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통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남은 임기 동안 레임덕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봤다.
윤태곤 정치 평론가는 “세월호·메르스·공천파동 등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대형 이슈에서 정부의 대응 및 소통 능력이 바닥을 드러냈고, 이번 선거에서 심판성 민심이 드러났다”면서 “탈당 인사가 복귀해 제1당 지위를 회복한다 해도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여당 세력 약화로 현 정부 국정 운영 동력은 크게 상실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등 야당 세력과 소통에 나서지 않는다면 남은 기간에 국정 운영 정상화는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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