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천우희가 대중들의 눈에 띈 것은 영화 ‘써니’였다. 본드 소녀 역을 맡으며 강렬하게 관객들 앞에 나타난 그는 이후로도 ‘한공주’ ‘카트’ ‘손님’ 같은 작품 속에서 일반적인 여배우가 감당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했고, 어느 샌가 그는 ‘강한 여배우’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인정받은 천우희는 지난 2014년 ‘한공주’로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에 그의 다음 행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렸고, 이번에 개봉한 ‘해어화’가 그 첫 작품이다.
“‘해어화’를 제안 받을 당시 상을 받고 얼마 되지 않은 때인 1월이었다. 솔직히 내 연기를 냉정하게 보실 분들이 분명 있을 것 같아서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너무 재거나 너무 빨리 작품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심리적으로 자리를 잡고 천천히 작품을 선택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이 들어왔다. 이 영화는 나도 모르게 한 번 거절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무게감을 털어낼 필요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도전할 의미가 있을 거라는 말을 해주셔서 선택하게 됐다.”
무게감을 털어내고 천우희는 처음으로 영화 속에서 소녀가 됐다. 천우희는 외모도 목소리도 아름다운 연희 역을 맡아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매력을 뽐냈다. 연희는 밝고 생동감 있으며, 여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인물이다. 특히 그가 한복ㆍ양장을 입은 모습은 누구나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예전 작품에서는 노메이크업에 의상도 한 벌만 있었다.(웃음) 이번에는 내 장기를 어필할 수 있었는데, ‘천우희가 꾸미기도 하고 노래 실력도 있었네’란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의상이 가장 마음에 든다. 양장은 입는 느낌도 색달랐고 보기에도 좋았다.”

영화의 대부분을 이끄는 것은 소율(한효주 분)과 연희의 노래로, 이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천우희는 4개월간의 준비 기간 동안 발성부터 그 시대의 창법까지 느낌을 내기 위해 준비했다. 연희는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인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1940년대 최고 작곡가인 윤우(유연석 분)의 뮤즈가 되는 인물이다.
“부담이 굉장했다. 연희를 수식하는 말이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웃음) 윤우가 찾던 목소리여야 했고, 대중들이 열광해야 하는 목소리야 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초반에는 노력하면 되겠지 했는데 연습 과정에서 좌절을 했다. 그러다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이 이 작품이 내게 들어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내 노래 실력을 모르고 캐스팅한 것처럼 나는 나만 할 수 있는 연기적인 표현을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찍었다.”
‘해어화’는 두 여자의 재능에 관한 이야기로, ‘해어화’ 속 예인의 삶은 천우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배우로서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언제나 깊게 생각하고, 연기를 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있다.
“연기를 할 때 정말 즐겁기도 하면서 한순간 머리가 터질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다. 그래도 쾌감을 느끼는 것은, 나는 평범한데 연기할 때만큼은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을 얻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새로운 작품을 만났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도 만나는데, 연기는 내게 세상과의 접점이 되어준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 감정 등도 배운다.”

많은 배우들이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만, 천우희는 가장 기분 좋은 수식어로 ‘천의 얼굴’을 꼽았다. 여기에는 다양한 역할과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는 그의 욕심도 담겨 있기에 그의 다음 모습이 기다려진다.
“천 씨라서 그런가 ‘천의 얼굴’이라는 별명이 있다. 뭘 입혀도, 어떤 연기를 해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평범과 비범을 오가는 사람’이라는 말 역시 평범하지만 존재감이 뚜렷하다는 말인 것 같아서 좋아한다.”
“항상 새롭고 싶고, 새로운 세대를 대변하고 싶다. 예술이라는 분야는 항상 새로워야 하는데, 기존과 같으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내가 특별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내 영역에서 내 색깔을 나타내고 싶다. 여배우지만 과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미디나 멜로도 좋아하고, 아직 해보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열어놓고 있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