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충전기 확충이 지금까지 양적 확대에서 소비자 중심의 질적 개선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충전 인프라별 사용자 호환성, 충전케이블 표준화, 신속한 유지·보수까지 서비스 향상도 필수다. 충전소 부지 선정과 인·허가 절차, 서비스사업자 등록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자발적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필요하다.
◇충전 유료화에 걸맞은 서비스 질 향상부터
24일 업계에 따르면 제주도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7월까지 제주 지역에 급속충전소 100곳을 세울 계획이다. 한국전력이 필요 예산을 대고 제주도가 부지를 선정, 충전소를 구축한다.
부지 선정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부지 선정에 들어갔지만 현재까지 50곳도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100개 급속충전소를 완료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급속충전소는 일반 주유소 수준의 공사 절차와 적지 않은 예산이 든다”면서 “이 때문에 부지를 선정했다 해도 전력설비 증설, 인·허가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고 덧붙였다.
시장 수요를 예측해 충전소를 짓기보다는 충전소부터 세우고 보자는 식으로 사전 준비 없이 급하게 진행됐다는 얘기다. 급속충전기는 일반 완속충전기(7㎾h급)와 달리 50㎾h급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 충전기도 3~4배 이상 크다. 수전설비와 안전시설, 추가 선로공사도 필요하다.
업계에서 신규 충전기 설치보다 기존의 충전설비 재정비가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금까지 구축된 충전기는 사업 주체가 달라 사용자 호환이 안 되는 데다 전국 충전소의 위치 정보나 운전자 주위에 사용할 수 있는 충전기 상태 정보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 체계도 구축되지 않았다.
정부가 다음 달 통합정보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신속하게 통합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충전기별로 전기차 연결 케이블 규격도 다르고 전담 인력이 부족, 안전사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박경린 제주대 교수는 “전기차 3000대까지는 가정·사업자 충전기 이용층이 많았지만 올해 말 제주 지역에 전기차 1만대가 넘어서면 공용 충전인프라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면서 “충전소 확대에 앞서 기존 충전설비의 호환성이나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정보체계 확립, 유지보수 관리 매뉴얼 등 서비스 질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지자체는 시장 조성하고 사업은 민간 주도로
충전인프라 업계는 최근 정부가 공공충전소 이용을 유료로 전환함에 따라 수익 창출 부담이 없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의 시장 참여는 제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유료 전환에 따라 충전인프라가 더 이상 공익 성격보다는 경쟁을 위한 시장 기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충전인프라 시장이 초기여서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환경부가 전국에 구축한 급속충전기 337기와 앞으로 구축할 300기만으로 정부의 시장 참여 역할은 충분하다”면서 “이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인프라 구축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민간이 시장 확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 서비스 사업자가 시장성과 수익성을 고려해 수요를 예측하고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가 사업자 충전 전기요금 보조나 한전 불입금 등 고정 비용을 한시 면제해 주는 등 지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속충전기 설치 시 부지나 설비 구매비용뿐만 아니라 설치나 이전 시 무조건 내야 하는 500만~600만원 한전 불입금, 기본요금(대당 15만원) 등 초기 고정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충전인프라 민간 사업자는 “유럽 선진국은 급속충전기 확대보다는 별도의 수전 설비가 필요 없는 중속충전기(20㎾h)나 시내 주요 노상 주차 면을 활용한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시장 제도가 미흡해 노상 주차 면을 활용한 충전서비스나 중속충전인프라 확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