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준대형에 밀려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중형 세단에도 봄이 찾아왔다. 지난해 자동차 시장 승자가 SUV였다면 올해 단연 주목받는 차는 `중형 세단`이다.
SM6가 스타트를 끊었다.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을 들여오면서 가격은 유럽보다 낮게 책정했다. 헤드업디스플레이(HUD)처럼 같은 가격대 경쟁 모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능도 적극 채택했다. 출시 첫 달 단숨에 국내 중형세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파는 대단했다. 중형세단 시장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올해 초 `2016년 자동차시장 전망`을 내놓으면서 국산차 가운데 중형차가 16만4000대가량 팔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8.2% 줄어든 수치다.
세계 자동차 시장 전망도 마찬가지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시장조사 기관 IHS의 자료를 인용, 올해 D 세그먼트 차량(중형)이 지난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10.8%에서 올해 10.5%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형과 대형을 합친 E/F 세그먼트 차량은 비중이 2.7% 동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대신 SUV 성장성에 주목했다. SUV는 22.9%에서 23.2%로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는 달랐다. 달라진 중형 세단을 기다리고 있던 소비자가 폭발적으로 응답했다. SM6가 나온 첫 달인 지난 3월 중형세단 판매량은 2만11대다. 지난해 3월 1만6262대에 비해 23.1% 증가했다. 전월 대비 증가율은 69%에 이른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새로운 중형 세단의 반응은 대단하다. 신형 말리부가 나온 이후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올 뉴 말리부는 미국에서 1월 1만4746대, 2월 2만1418대, 3월 2만2058대 등 판매를 기록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주목받고 있는 중형 세단
중형 세단이 주목을 받으면서 시장 경쟁도 치열해졌다.
닛산이 먼저 가세했다.
한국닛산은 올 뉴 알티마를 지난 19일 수입 중형 세단 최초로 2000만원대인 2990만원에 출시했다. 지난 2009년 알티마를 국내에 첫 도입했을 때보다도 400만원이나 낮아졌다. 낮은 트림에도 웬만한 옵션이 포함돼 있는 수입차 특성상 국산차보다 싼 가격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급의 쏘나타와 비교해도 저렴하다. 보험료와 유지비용 등을 고려할 때 장기로는 국산차가 더 저렴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초기 비용이 낮아진 것은 큰 강점이다.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있는 말리부의 출현도 기대해 볼 만하다. 한국지엠은 오는 27일 올 뉴 말리부를 국내에 출시한다. SM6와 알티마가 기대보다 낮은 가격에 책정된 만큼 말리부 역시 첨단 기능이 더해진다고 해도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중형세단 시장에서 쏘나타로 1등을 놓치지 않은 현대차도 다급해졌다. 하반기에나 나올 만한 2017년형 모델을 4월에 출시했다. 내·외관은 그대로지만 트림 하나를 추가하고 새로운 패키지도 구성하면서 낮은 트림 가격대를 다소 높여 출시했다.
세단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프리미엄 준대형 세단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당초 계획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 올 뉴 E클래스를 국내 시장에 출시한다. 올해 초 전 세계에 출시된 모델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출시가 다소 빠른 셈이다. BMW는 새로운 5시리즈 출시가 내년으로 예정돼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판 모델을 선보였다. 최근 재규어도 완전히 달라진 올 뉴 재규어XF로 온·오프로드를 모두 잡는 콘셉트의 세단을 선보였다.
◇세단 시장 띄운 동인은
그동안 중형세단 시장이 침체된 가장 큰 이유는 신차 부족으로 분석된다. 자동차 시장에서 `신차`는 시장을 띄우는 가장 큰 동력이다. 6~7년 만에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면서 자동차 제조사는 내·외장 디자인은 물론 차체를 구성하는 소재와 안전 사양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이름만 빼고 모두 바꾼다. 첨단 기능이 대거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쏘나타는 2014년 3월, K5는 2015년 7월 각각 완전 변경 모델이 출시됐다. 그렇다고 주목을 받을 만한 수입차 신형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1년에 1개 종 정도로 전체 시장을 띄우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신차가 적다 보니 안전장치 및 파워트레인을 비롯한 첨단 기술 도입이 중형 시장에서는 늦어졌다. 차로 이탈 방지를 비롯해 최신 경차에도 적용되는 기능이 구형 중형 세단에는 없는 사례가 많다. 2010년 31만4148대에 이르던 국산 중형세단 시장은 침체 일로를 걸으면서 지난해 20만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SM6가 시장에서 크게 환영을 받은 것도 이러한 요인이 크다. 르노삼성은 중형 세단의 수요도 있지만 시장이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전략에 따라 SM6를 출시했다.
박동훈 르노삼성 사장은 출시 행사에서 “중형차 시장이 줄어드는 이유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세단에서 SUV로 소비자가 넘어갔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기술 진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3월부터 시작된 중형 세단 랠리가 중형 세단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자동차에는 기존의 대형 자동차에서나 채택하던 기능을 적용하고 차체 강성을 높이면서도 중량은 줄였다. 편의성과 연비가 모두 높아졌다. 알티마도 국내에 출시된 2000㏄ 이상 가솔린 모델 가운데 가장 높은 13.3㎞/ℓ 공인 복합연비를 기록했다.
신차가 이어지면서 현대·기아차의 대응도 기대된다. 현대차가 2017년형 쏘나타를 내놓았지만 이 같은 점에서 시장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에는 첨단 기술이 대거 들어가는데 2017년형 모델만으로 차별화는 힘들 것”이라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첨단 기능을 추가하거나 준대형 모델 가격을 낮추는 등 중형 시장까지 침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보경 자동차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