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소리 두 멤버는 해외파다. 코코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학교 1학년까지 마친 후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 소리 또한 중학생 시절 일본에 유학을 가서 대학교까지 진학한 뒤 하고 꿈을 위해 모든 걸 정리하고 귀국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한국인으로는 혼자서 치어리딩부에 들었어요. 신입생 환영회 당일 선배들의 무대를 보고 흥분돼서 잠이 안 올 정도였죠. 그래도 유학 왔으니 공부는 해야 하니까 제가 하고 싶은 걸 접어두고 대학교까지 갔어요. 그런데도 가수가 정말 하고 싶었고 이 일을 못하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본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소리)
“저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하셨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까지의 과정을 마치면 허락해주겠다고 하셔서 부모님 말씀대로 1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한 후 한국에 왔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항상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코코)
일본에서 오래 생활했던 소리는 유학 당시 지진으로 겪었던 잊지 못할 경험담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루는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길이 심하게 요동 쳤어요. 그러던 중 차가 멈췄고 창밖에 있는 기와집이 있었는데 아들로 보이는 남자 분이 할머니를 안고 있었어요. 지진 때문에 기왓장이 깨지고 위험한 상황인데도 할머니를 지키려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감동적이었어요. 일본은 한 번 지진이 일어나면 여진도 계속 일어나요. 그럴 때마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소리)
두 사람은 가수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바로 빛을 봤던 건 아니었다. 코코는 블레이디라는 걸그룹에 합류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소리 역시 걸그룹 준비 도중 데뷔가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팬들의 응원은 코코소리에게 큰 힘이 됐다.
“예전 동대문 의류매장 앞 무대에서 행사를 한 적 있었는데 당시 데뷔한지 얼마 안됐을 때였는데도 한 팬이 엄청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저희를 응원해주시더라고요. 당시 MC를 보신 분도 많이 놀랐을 정도로 목소리가 컸어요. 그리고 그 다음 주에 한 번 더 행사를 갔는데 팬들이 열 분 정도 더 늘었어요. 비록 추운 날씨였지만 추위를 못 느낄 정도로 감사하고 코코소리에게 큰 힘이 됐어요.” (소리)
일본 장수 아이돌 그룹 핑크레이디처럼 50살이 넘어서까지 활동할 수 있는 친근하고 독특한 그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코코소리. 두 사람이 생각하는 코코소리만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희는 아직 엄청난 실력파 그룹도 아니고 비주얼도 그리 뛰어난 건 아니지만 코코소리 노래를 듣고 친근하게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친근함이 저희의 매력이니까요.” (코코)
올 한 해 동안 바쁘게 달릴 코코소리의 목표는 확고했다. 신인상 욕심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노래가 음원차트 50위 안에 들면 무료 팬미팅을 하겠다는 순위 공약까지 내걸었다. 끝으로 코코소리는 자신들을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앞으로도 더 성장하는 모습 보여주겠습니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코코)
“코코소리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생겨서인지 항상 감사해요. 앞으로 더 부족하지만 성장해가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신곡 ‘절묘해’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소리)
최민영 기자 my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