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리뷰] ‘곡성’, 에너지 충돌이 만든 ‘혼돈’

출처 : '곡성' 포스터
출처 : '곡성' 포스터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은 낯선 외지인이 나타난 후 의문의 연쇄 사건들이 펼쳐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던 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여자가 잔인하게 살인된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넋이 나가고 두드러기 증세를 일으키며 죽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역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경찰들은 이 사건을 야생 버섯 중독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이 범인이라는 소문이 퍼진다. 사람들은 외지인이 네 발로 걷고 빨간 눈을 가진 괴물이며 짐승을 뜯어먹는다고 수군댄다. 자살한 여자 역시 외지인에게 겁탈을 당했다더라와 같은 소문도 있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다.

처음에 경찰 종구(곽도원 분)는 이런 소문을 믿지 않지만,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하는 신비로운 여인 무명(천우희 분)의 말을 듣고 외지인이 연쇄 살인의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이어 종구는 딸(김환희 분)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자 무속인 일광(황정민 분)을 불러들인다.

‘의심’이라는 실체 없는 존재는 종구를 혼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 인과관계 또한 알 수 없다. 외지인은 종구에게 “무엇을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명과 일광은 종구에게 자신 외에는 무엇도 믿지 말라고 현혹시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 중 누구의 말도 쉽게 믿기 힘들다는 것이다.

악마, 구원자, 신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과연 우리는 그들을 구별할 수 있을까. 나홍진 감독은 관객이 예상하는 것을 하나 같이 아니라고 말하며, 극한의 혼란스러움을 준다.

이 과정을 나 감독은 기괴하고 잔인하게 그려냈다. 물론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인 ‘추격자’ ‘황해’처럼 직접적인 살인 장면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 없이도 나 감독 특유의 스릴러 요소는 극 전체를 흔들어댄다. 해골 모양으로 시드는 금어초 등 오싹한 소품 등도 한 몫 한다.

특히 오컬트, 샤머니즘, 좀비 등이 소문과 얽혀 나뒹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간 중간 삽입된 거대한 산등성이들이 겨우 마음을 다잡게 한다.

곽도원은 평범한 가장에서 극한의 상황이 이르며 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종구로 분해 극을 이끌어 내며, 외지인으로 분한 쿠니무라 준은 예상 불가능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황정민과 천우희는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매 신이 하이라이트일 정도로 임팩트 있는 모습을 선사한다. 특히 황정민이 얼굴을 피에 담그고 굿을 할 때와 피를 토하는 신 등은 앞으로 황정민을 평생 쫓아다닐 정도로 강렬하다. 아역 김환희의 신들린 연기도 인상 깊다. 12일 개봉.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