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학자]김근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물리학으로 미래 전자공학에 사용될 새로운 물질을 재단하는 디자이너가 꿈입니다.”

지난해 여름, 국내 물리학계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30대 초반 젊은 물리학자가 세계적인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꿈의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2차원 신물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김근수 포스텍 교수
김근수 포스텍 교수

이 새로운 물질은 원자 한 겹 두께에 불과한 포스포린. 원자배열이 그래핀과 유사하지만 규칙적인 주름을 가지고 있어 물질이 가진 성질을 제어하기 쉬운 물질이다.

이 물질은 전자 이동을 가로막는 띠 간격(밴드갭)을 갖고 있는데, 밴드갭이 없어 전류가 쉽게 흐르는 그래핀과 달리 밴드갭을 조절한다면 전류의 흐름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게 된다. 그래핀은 `꿈의 소재`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제어가 쉽지 않아 전자소자로서 상용화하기가 힘들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김근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다.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거쳐 2013년에 포스텍에 임용됐다.

그는 고체 표면에 구성된 원자 크기 물질을 연구했다. 원자 두께의 물질들이 실제로 유용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껴 2차원 물질 연구에 주력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예술에 비교한다.

김근수 포스텍 교수(왼쪽)와 김지민 연구원
김근수 포스텍 교수(왼쪽)와 김지민 연구원

“연구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에도 `창작의 고통`이 있고, 아주 작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조차 괴로운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하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고민은 제가 연구를 멈추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거란 거죠. 좋은 성과를 거두더라도 말입니다.”

김 교수는 연구를 위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치열하게 노력했다. 결국 흑린에서 떼어낸 2차원 물질, 포스포린의 전류 흐름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포스포린 밴드갭이 0이 될 때는 그래핀과 비슷한 전도성을 가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2차원 단면에 불과한 초소형 반도체 소자 가능성을 연 것이다.

김근수 포스텍 교수 연구팀. 가운데가 김근수 교수.
김근수 포스텍 교수 연구팀. 가운데가 김근수 교수.

그래핀의 문제점은 해결하고, 그래핀이 가지는 우수한 성능은 그대로 유지한 소자를 만들 수 있게 된 셈이다. 연구 성과는 사이언스에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3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수여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도 수상했다. 포스텍에 온지 고작 3년만이다.

그렇다고 김 교수는 연구실 안에만 갇힌 `괴짜` 같은 연구자는 아니다.

젊은 연구자답게 연구를 하지 않을 때는 쇼핑도 하고 카페에 앉아 독서도 즐긴다.

“유행이 오고 가는 걸 보는 게 즐겁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그가 연구자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됐을까?

“아마 PD가 되지 않았을까요? 고등학교 다닐 때 방송반에 있었는데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거든요. 그러고 보면 방송 작품을 만드는 건 논문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도 굉장히 닮아 있기도 하네요.”

모든 일상을 연구에 비유하는 것을 보면 그는 천상 연구자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