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쳐 줄 것이다”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는 앤디워홀의 말이 과격하게 와전된 말로, 일명 이름값을 풍자하는 말이다.
지난 17일 가수 조영남이 대작 논란에 휩쓸렸다. 지금까지 조영남의 작품이라 알려졌던 그림들은 조영남이 콘셉트를 제공하고 보조작가가 조영남의 지시대로 그림을 그린 후 조영남의 사인이 얹어져 판매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작을 한 화가는 10만 원을 받았고, 이후 조영남의 마무리와 사인이 들어간 작품은 1천만 원에 판매됐다. 무엇이 미술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일까. 일반적인 물건과 달리 미술품 가격은 작가의 이름값이나 희소성 등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때문에 조영남의 작품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1천만 원에는 조영남이라는 이름값이 포함됐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진중권 등은 여러 명의 화가가 함께 작업하는 것을 ‘관행’이라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의 작품은 조영남이 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믿음 때문에 가격이 더 높아진 것이다. 특히 구매자들은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는 것에 가치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조영남은 일반 화가가 아닌 연예인이 그린 좋은 작품으로 더 유명해진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상황을 비판한 영화가 있다. 얼마 전 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김경원 감독의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유학에도 실패한 화가 지젤(류현경 분)이 입시생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중 미술품의 진가를 한 눈에 알아본다고 자부하는 갤러리 관장 재범(박정민 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범죄를 통해 예술 계열의 허(虛)를 풍자한다.
실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은 강했던 지젤은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박중식(이순재 분)에게 “당신 작품 과대평가 됐어요. 쪽팔린 줄 아세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젤 역시 신인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사건으로 천재작가 칭호를 받는다. 갤러리 관장은 지젤의 ‘천재스러운 삶’을 그리기 위해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거짓말로 인해 그의 작품 가격은 억대로 치솟는다.
지젤은 오인숙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지젤과 비슷한 작품을 그리지만, 오인숙의 작품은 지젤의 작품에 비해 1/10 수준에 불과한 가치를 갖는다. 어떤 작품인가보다 어떻게 평가를 받는지, 누가 그렸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김경원 감독은 “지젤은 예술의 본질에 관심을 두는 인물이다. 천재 예술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에 영화를 만들게 됐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반면에 지난 2013년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은 자신의 유명세로 책이 팔리지 않길 바람에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새 책을 펴냈다. 로버트 갤브레이스(Robert Galbraith)란 남자 이름으로 ‘더 쿠쿠스 콜링(The Cuckoo's Calling)’라는 책을 낸 롤링은 “갤브레이스가 되는 것은 내게 있어 자유로운 경험이었다”며 “선전이나 기대감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반응을 듣는 것이 내게 있어 순수한 즐거움이었다”며 가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영국의 한 매체는 ‘더 쿠쿠스 콜링’이 롤링의 작품이란 사실을 밝히기 전에는 1500권 정도가 팔렸었지만, 롤링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런던 주요 서점가에서 거의 모두 팔렸으며 구매 주문 물량에 맞추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처럼 이름값은 버릴 필요도 없지만 버리는 것도 어렵다. 롤링이 추구한 것처럼 진정한 예술이라면 이름값이 아닌 작품 그 자체에 가치가 매겨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름값이란 예술가의 자존심, 예술가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양심 문제이니 말이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