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영화 View] 아역, 정열적인 작은 불꽃

‘곡성’의 여주인공은 김환희다. 그는 성인 연기자들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한번에 잡았다. 본인이 관람조차 할 수 없는 15세 관람가 영화를 어린 아이가 이끈 것이다. 김환희 뿐 아니다. ‘귀향’의 강하나와 ‘소원’의 이레는 주연으로 성인 배우 이상의 연기를 해낸다.

이들이 출연했던 영화들은 성인들이 보기에도 ‘강’하다. 천진난만했던 아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변한다. 신이 들리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등 성인이 맡았다고 해도 트라우마가 남을 법한 설정이다. 성인 관객들이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역할을 어린 아이인 그들이 해냈다.



물론 충격적인 역할을 해야만 연기를 잘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해서는 안 될 고통스러운 내면과 외면을 잘 표현했기에 더 주목하게 된다. 이들은 어린 나이지만 연기는 결코 어리지 않다.

출처 : '곡성' 스틸
출처 : '곡성' 스틸

◇ '곡성' 김환희

‘곡성’은 시골 마을에 의문의 연쇄 사건들이 펼쳐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피해자들은 두드러기와 발작 증세를 일으킨다. 김환희가 맡은 효진이가 피해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자 아버지인 종구(곽도원 분)는 무속인 일광(황정민 분)을 불러 효진의 몸속에 있다는 악귀를 없애려고 한다. 김환희는 귀신이 들린 효진이를 그려내기 위해 발작을 하고, 게걸스럽게 폭식한다. 그리고 아빠 종구에게 욕을 하고 칼을 손에 쥔다. 이 연기를 한 김환희는 2002년 생으로, 촬영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나홍진 감독은 김환희를 캐스팅한 이유로 “아역배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배우를 선택했다”고 이야기 했다.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김환희는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등 연기파 배우로 정평이 난 성인연기자들과 호흡에서 절대 밀리지 않으며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나 감독은 “장시간에 걸쳐서 김환희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김환희와 어머니에게 아역배우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고, 연기에 있어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다. 김환희는 연기 경험이 있는 친구기 때문에 자신이 배우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항상 감탄했을 정도로 놀라운 배우였다”며 믿음을 드러냈다.

또한 나 감독은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모두 힘들었을 텐데,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서 슛 들어가기 전에 기도 하고, 끝나고 기도하면서 이겨냈다”며 “액션신을 찍기 위해 6개월 정도 체력을 키우고 훈련을 시켰다”고 전했다.

출처 : '귀향' 포스터
출처 : '귀향' 포스터

◇ ‘귀향’ 강하나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1943년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강하나 분)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간 후 고초를 당한 일을 담은 우리의 아픈 역사 이야기다.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것은 어린 소녀가 소화하기엔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상황이다.

조정래 감독은 재일교포를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배우 김민수를 일본군 여자 관리 역으로 캐스팅했다. 예상치 않게 김민수의 딸인 강하나도 시나리오를 본 후 충격을 받고 출연을 결심했고 오디션을 통과했다.

강하나는 15세에 출연을 결정했고, 16세에 촬영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운명처럼 다가왔다. 가족회의 했을 때 하나가 꼭 하고 싶다면서 울었다. 그래서 해야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강하나는 엄마가 촬영 현장에 있었고 제작진이 세심하게 배려했지만 일본군에게 겁탈 당하는 촬영이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찍기 전에 세 네 시간 전부터 계속 힘들었고 연기 부분 걱정보다 (상황이) 진짜 많이 무서웠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뿐만 아니다. 강하나는 재일교포 4세로 현재 오사카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혐한 시위가 일어난다. 강하나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은 있다. 그래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서 출연을 결정하는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고, 조정래 감독은 “어떻게 보면 목숨을 내놓고 한 것이다. 대체 왜 이걸 하냐 물었더니 이 영화를 통해 본인도 귀향했다고 하는 거다”라고 전했다.

출처 : '소원' 포스터
출처 : '소원' 포스터

◇ '소원' 이레

‘소원’에서 학교를 가던 초등학생 소원(이레 분)이는 술에 취한 아저씨에게 끌려가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영화는 소원이네 가족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레는 2006년 생으로, ‘소원’을 촬영했을 당시 8세에 불과했다. 아동성폭행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성인 관객들에게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레는 작은 몸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 붕대를 감는 등 외상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연기부터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