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후인 지난 4월 15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주춤한 구조조정 작업이 재개되는 신호탄이었다. 정부는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협의체`를 열고 구조조정 추진 계획과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논의는 기대만큼 진전되지 못했다.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을 두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 용선료 인하 협상도 아직은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업계는 6월에 주목하고 있다. 국책은행 자본 확충,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 등 그동안 논의 결과가 대부분 다음 달 가시화 된다. 구조조정의 성패는 올해와 내년, 나아가 우리 경제의 중장기 성장세를 결정짓는다. 구조조정을 성공리에 마무리, 한국 경제를 `저성장 늪`에서 건져 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다음 달 확정하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 아직 `오리무중`
조선·해운업체 구조조정의 이슈는 △조선사 세부 구조조정 △해운사 용선료 인하 협상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으로 압축된다. 이 가운데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실탄` 마련 작업이라는 점에서 가장 난해하고 중요한 문제다.
구조조정에는 돈이 필요하다. 비용은 당사자 부담이 원칙이지만 해당 조선·해운업체는 빚이 많아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주채권자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인데 그동안 20조원 넘게 돈을 빌려줬다. 추가 자본의 투입 여력이 없는 국책은행을 위해 정부가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일 처음 관계기관 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 주재로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관계자가 참석했다. 이들은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필요성에 공감하고 재정과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검토하기로 했다.
다음 회의 전까지 약 2주 동안 정부와 한은 간 의견 충돌이 표면화 됐다. 한은의 직접출자 여부를 두고 정부와 한은이 이견을 보였다. 19일 2차 회의에서 합의점 도출이 기대됐지만 오히려 갈등은 커진 모양새다.
2차 회의 후 기재부는 “향후 구조조정 상황 변화에 탄력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직접출자와 자본확충펀드를 통한 간접출자 방식을 병행하는 안을 폭넓게 검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곧바로 한은은 “직접출자는 검토하지 않는다”며 기재부 발표를 정면 반박했다.
정부는 한은의 직접출자를 원하는 반면에 한은은 직접출자 시 자금 회수가 불확실해 사실상 `무상지원`이 될 것을 우려,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정부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마련 시한을 상반기로 못 박았다. 다음 달 세부 방안을 확정한다는 목표다. 업계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가 나며 이를 위한 `실탄` 준비가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 부총리는 지난 24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직접출자와 펀드를 통한 간접출자를 병행하기로 하는 등 기관 간 논의에 진전이 있었다”면서 “세부 방안을 속도감 있게 조율해 6월 말 이전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조선사 자구안, 용선료 인하 협상도 6월 `가시화`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구조조정 `지원`이다. 실제 작업은 해당 기업의 몫이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기업별 자구안이 확정, 실행될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채권단으로부터 최대 4조2000억원의 유동성 자금을 지원받고 총 1조85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이행하기로 한 바 있다. 새로운 자구계획은 이달까지 진행되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화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발생 가능한 경영상 충격에 따라 위기를 얼마나 견뎌 낼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재무건전성 조사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2일 주채권 은행인 KEB하나은행, 삼성중공업은 지난 17일 산업은행에 각각 자구안을 제출했다. 하나은행과 산업은행은 자구안 세부 내용의 보완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다음 달 조선업계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 밑그림도 함께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최근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채권단이 성동·SPP·대선조선 등 중소형 조선사 처리 방안을 6월에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조선업계 전반에 걸친 개편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실 원인은 `비싼 용선료`다. 용선료는 해운사가 배를 빌릴 때 내는 비용이다. 두 업체는 해운업의 호황기에 장기 용선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지금은 시세보다 약 5배 비싼 돈을 내 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배를 빌리고 있다.
법정관리 기로에 선 현대상선은 해외 선주와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행해 왔다. 교착 상태에 있던 협상은 최근 진전을 보였다.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던 영국계 컨테이너 선주 조디악이 현대상선이 제시한 용선료 인하 방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31일과 다음 달 1일 총 4건의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모 회사채 8043억원에 대한 채무 재조정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용선료 인하 협상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30일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에 대해 “외국 컨테이너 선사들과 기본 방향에 합의했고, 세부 조건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협상 전체 맥락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밝혔다.
업계는 31일 채무 재조정을 앞둔 30일을 용선료 협상의 데드라인으로 봤지만 임 위원장은 “최종 협상 결과가 30일 나오는 것은 아니다”면서 “용선료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물리적 시한보다는 협상을 타결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의 경영 정상화 방향은 다음 달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 결과는 한진해운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진해운과 용선료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선주들 가운데 일부가 현대상선과 겹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다음 달 17일 상장 채권인 한진해운71-2 관련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한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