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위기가 오면서 불확실성 시대의 고통이 우리 사회 전체와 국민 개개인에게도 파급돼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 왔고, 기업은 영업망을 개척하고 빠르게 상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저돌적 추진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개발과 성장기에 맛본 성공 경험과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단시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아직도 한국 기업의 정서를 장악하고 있는 점도 많다. 그러나 장기화된 경기 침체 속에서는 이런 과거의 성공 경험이 신화가 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음이 종종 지적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요구가 급격하게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예상되는 저성장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장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그 가운데 21세기 글로벌 지식 시대에 기업이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여성 기업가 정신이 제시된다.
상품기획 중심이던 여성의 역할이 경영 영역으로 확대되는 데에는 과거 성장 위주 전략을 펼치던 기업들이 성장과 관리의 균형을 강조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부터 관리 역량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졌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이익 관리와 인력 관리에 장점을 나타내는 것도 기업들이 여성 임원을 늘리는 이유다. 또한 여성 임원 상당수가 상품기획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고 이어 가는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IBM, 페이스북, 제너럴모터스(GM), 록히드마틴, 휴렛팩커드(HP), 뒤퐁 등 세계 유수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도 여성인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의 경우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의 여성 등기임원 비율은 14%를 넘는다. 해외 100대 기업에서 여성 임원은 영국, 스페인의 경우 28%이다. 반면에 우리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글로벌 격랑의 무풍지대에서 단기 성과에 올인 하거나 남성 카리스마에 기반한 기업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의 기업과 사회는 공격적 성장주의를 바탕으로 경쟁과 적대의식, 승리주의, 성공지상주의를 최고 가치로 추구해 오면서 부정부패 팽배를 비롯해 불신 및 불법 만연과 함께 도덕 타락과 사회 질서도 무너져 내리는 부작용까지 초래했다.
그러나 여성 중심의 기업과 여성 기업가 정신은 섬김과 돌봄, 배려와 공감, 포용과 나눔, 소통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불신과 불법, 힘과 억압 문화의 극복을 통해 신뢰사회 문화의 회복까지 영향력의 파급이 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 기업가 정신은 사회 위기 극복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 여성성의 비전을 제시해 준다.
그동안 남성 중심 기업에서 창조보다 근면·성실·조직 중심의 가치를 추구해 왔다면 여성 기업가 정신이 강조하는 창조성은 조직과 기업은 물론 사회를 살리는 살림(삶)의 정신으로, 생명의 에너지다. 이것이 기업이나 사회가 21세기 시대 본질로 나아감을 가능케 해 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성의 강조는 시대가 성숙해지고 더 본질에 가까이 왔음을 의미하며, 여성 기업가 정신이 중심이 되는 시대라고 할 것이다.
조성남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장(사회학과 교수) sncho@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