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에서 김민희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예정이지만 세상 물정에 무지한 귀족 아가씨 히데코 역을 맡았다. 그는 순진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처음에 무색무취의 인물에 불과하지만 그 다음 시선으로 본 그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다. 예쁘고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했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김민희는 어떤 지점에 초점을 맞췄을까.
“전형화 된 캐릭터가 아닌 의외성과 양면성 있는 인물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어릴 때부터 억압받아서 뒤틀어진 인간성을 갖게 됐지만 본래의 순수한 면도 남아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죠. 히데코의 모든 것을 가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히데코의 진심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이 그의 진심을 어느 정도 이해해준다면 공감하고,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히데코가 진실한 눈빛을 종종 보내는데, 잘 살리고 싶었습니다.”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많이 어렵지 않았어요. 배우로서 해보고 싶었던 부분이었고,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재밌었거든요.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흥미로웠기 때문에 즐겼어요.”
‘아가씨’에서 김민희의 첫 등장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다. 직접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에 그의 행동이나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그의 감정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게다가 완벽한 일본어는 일본인인 히데코를 연기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저 역시 그 장면이 마음에 들어요. 악몽에서 깼을 때 아기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접근했죠. 일본인 역할이다 보니 일본어가 중요했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일어는 이 작품을 하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할 수 있는 한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후시 녹음은 삼일 정도 했어요. 내레이션도 많았고, 부족한 부분도 채울 수 있었죠.“
김민희의 목소리 연기는 낭독회 신에서 더 빛을 발한다. 다양한 목소리로 일인 다역을 소화한 김민희는 작품 속에서는 신사들을, 영화관에서는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사랑하게 되실 거에요.”극중 숙희가 히데코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김민희에게 빠져들 것이다.
“히데코는 교육받고 자라왔기 때문에 낭독에 능숙한 친구예요. 일인 다역을 하면서 생생하고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글에 나온 대로 낭독을 했고, 특정 단어들이 놀라움을 주기도 했지만, 충격을 받진 않았어요. 눈빛이나 백작과 교환하는 감정들은 정확한 디렉션이 있었습니다.”
히데코가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드러내는 대상은 오로지 숙희 뿐이다. ‘내 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라는 내레이션은 히데코가 숙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사다.
“숙희는 사기꾼이지만 동무이면서 ‘나의 사랑’이죠. 제 인생을 망치러 와서 사랑을 느끼게 해줬으니 다양한 측면이 있어요. 히데코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준 인물이기 때문에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숙희는 너무 귀엽고, 어렸을 때 좋아하던 친구를 골탕 먹이고 놀렸던 감정으로 바라봤어요.(웃음) 모든 요소들을 다 생각하면 재밌는 설정을 하게 되더라고요.”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이 “잔재미가 가득한 영화”라고 자부한 만큼 깨알 같은 재미가 곳곳에 준비돼 있다. 특히 히데코를 처음 만난 숙희가 “예쁘면 예쁘다고 미리 말을 해주든가”라든가 자살을 시도하는 신이 재미있게 그려진 것 등은 따로 떼놓고 보면 로맨틱 코미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관객들에게 웃기겠지만 사실 히데코 입장에선 당연한 액션일 뿐이에요.(웃음) 배우가 코미디를 만들어낼 필요 없이 상황과 대사에서 느껴지는 유머가 있었죠. 촬영할 때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하정우가 복숭아를 먹는 장면이었어요. 이미 시나리오를 봤기 때문에 재밌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제 앞에서 드시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웃겼어요. 아주 잘 드시더라고요.(웃음)”
‘아가씨’를 통해 파격에 도전했기에 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저는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 중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요. 이런 도전을 했으니까 앞으로 의도적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도 없고 거기에 대한 부담감도 없죠. 매번 새로운 것만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요. 같은 것을 반복해도 저에겐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연기는 대부분 일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울 수가 있어요.”
“요새는 연기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평소에 특별한 다른 놀이를 하는게 아니니까 연기하는 게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발견하고 있어요.”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