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을 확정하면서 해운·조선 업종 구조조정은 속도가 날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급한 불` 진압에 그쳤을 뿐 아직 곳곳에 불씨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조선과 함께 5대 취약 업종으로 꼽힌 철강, 석유화학, 건설 부문이 불안 요소다. 전자, 자동차 등 다른 주력 업종도 군살빼기 작업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정부는 5대 취약 업종 가운데 구조조정 1순위로 해운·조선을 선택했다. 철강, 석유화학, 건설 업종은 상황이 다소 낫다고 판단하고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뤘지만 구조조정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철강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철강 소비 감소,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으로 영업이익률이 개선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석유화학 업계는 최근 유가 하락으로 제조원가가 떨어지고 마진이 높아졌지만 공급 과잉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철강, 석유화학, 건설 업종 상황을 지속 점검하고 기업활력제고법 등을 활용해 사업 재편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업계가 구조조정 계획을 자발 수립하면 정부가 지원한다는 방향이다. 하지만 설비 자율 감축, 인수합병(M&A)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괜찮은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언제 해운·조선 업종처럼 `벼랑 끝`에 서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아직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은 다른 주력 업종도 문제다. 반도체 등 전자 업종, 자동차 등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정부는 “철강, 석유화학 외 분야도 정부 내 협의체 운영으로 공급 과잉 업종 여부를 지속 점검하겠다”면서 “해당 업종은 기업활력제고법을 활용해 M&A, 업종 전환, 설비 축소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산업을 이끌어 온 전자 업종은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적으로 휴대폰, TV 등 전방산업의 불황이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제때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못한 일본 전자기업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는 줄어드는데 공급은 늘고 있고, 중국 등 후발국의 기술경쟁력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3473억달러)보다 2.9%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업종도 세계적 공급 과잉이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에 따르면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는 8850만대로 지난해보다 2.9%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2012년 5.2%를 기록한 후 성장세가 지속 둔화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완성차 업체의 증설 움직임이 계속돼 공급 과잉을 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생산량은 약 9158만대로, 이르면 2018년 1억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