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두 번째 죽음의 계곡, 특허분쟁

[ET단상]두 번째 죽음의 계곡, 특허분쟁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동부에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있다. 여름철 평균기온이 섭씨 45도를 넘나들고, 모든 것을 말려 버릴 듯 건조한 이곳을 두고 혹자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기에 가혹한 땅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은 골드러시 때 서부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이곳에 역마차를 타고 들어온 일행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이곳을 빠져나가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금을 찾아 지름길을 가로지르려던 광부들이 험난한 계곡에서 삶과 죽음에 직면했듯이 창업 초기 벤처기업은 기술 개발 후 상업화 과정에서 죽음의 계곡을 마주한다.

지난해 4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창업기업의 3년 후 생존율은 40% 남짓이었고, 5년 후는 30%를 밑돌았다. 산술로만 보면 창업한 기업 10곳 가운데 6~7곳은 3~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다.

창업 초기 기업이 겪는 자금과 마케팅 애로가 첫 번째 죽음의 계곡이라면 성장기에 들어선 중소·중견기업이 내수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 이슈가 두 번째 죽음의 계곡이라 볼 수 있다.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단 몇 년 만에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 판도를 바꾼 샤오미의 세계 진출 전략에서 최대 난관은 특허가 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일찍부터 해외 특허 확보에 적극성을 보인 화웨이와 달리 샤오미가 특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채 3년도 되지 않았다.

샤오미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면서 특허가 발목을 잡고 있음을 파악한 2014년부터 중국 국내와 해외 특허출원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문제는 특허 확보가 단기간에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샤오미가 중국 내수시장의 성장 한계를 딛고 미국 등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지 여부는 결국 특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최초 PC 제조업체인 삼보컴퓨터도 글로벌 PC시장에서 특허 분쟁이라는 죽음의 계곡을 잘 건너지 못한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삼보컴퓨터는 가격 혁신을 통한 저가형 PC시장 창출이라는 공격적 마케팅 전략으로 1990년대까지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인기몰이를 했다.

미국 법인 이머신즈에서 내놓은 저가형 PC는 1999년 상반기에만 미국에 100만대 이상이 수출되는 등 미국 내 판매량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특허 소송으로 견제해 온 미국 기업의 공세에 밀렸고, 이어 PC산업 침체와 중국 기업의 가격 공세로 글로벌 PC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두 기업과 달리 발광다이오드(LED) 중견기업인 서울반도체는 특허 분쟁이라는 죽음의 계곡을 잘 건너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몇 년 전 일본 니치아, 필립스와의 특허 분쟁에서 적극 공격과 방어로 대처했다. 특허를 공유하는 크로스 라이선싱을 맺어 위기를 극복했으며, 그 이후에도 공격적 특허 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특허 소송에서 연거푸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청은 중소·중견기업이 글로벌 특허 분쟁에 선제 대응할 수 있도록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특허 등 지재권 확보 전략을 제공하는 지식재산(IP) 연구개발(R&D) 전략지원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에는 글로벌 아웃도어 업체와의 첨단 섬유특허 분쟁에서 상대방의 특허를 무효화시킴으로써 특허 리스크를 해소하기도 했다.

성공한 기업 경영은 수없이 다가오는 경영 리스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좌우한다. 내수를 넘어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소·중견기업에 두 번째 죽음의 계곡인 특허 분쟁은 기업에 따라 위기도, 기회도 될 수 있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특허 경쟁력 확보가 이를 가능케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영대 특허청 차장 lydae20@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