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말 대한민국을 초토화시켰던 국제통화기금(IMF) 후폭풍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법률 시장을 비약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 법률 시장은 `연쇄 도산과 참담한 구조조정`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경제가 되살아나는 과정에서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기업 연쇄 파산과 회생, 노동 이슈와 인수합병(M&A)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단기간에 흡수했다. 김&장 법률사무소를 필두로 한 한국 로펌은 대형화에 성공했고,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법률회사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한편에서는 법률 시장의 정보불균형과 불투명한 사회 환경을 악용,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브로커의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50억원 고액 수임료가 발단이 된 `정운호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해묵은 전관 비리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등 사람들은 법조 시장의 어두운 민낯을 대면하게 됐다. 이런 상반된 상황에서 과연 한국 법률 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 마이클 오스본 박사 연구팀이 빅데이터 분석으로 예측한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법조인은 인공지능(AI) 발달로 인해 회계사, 교사, 요리사, 의사, 약사 등과 함께 20년 안에 사라질 직업군으로 지목됐다.
많은 법조인은 이와 같은 지적에 “법률서비스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면서 “복잡한 사실관계를 구체화하고 정리해 법리(法理, 법률 논리)에 맞게 포섭하는 일을 어떻게 AI가 인간의 그것처럼 구현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법조인의 반응과는 별개로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과 같은 빅데이터 기반 기술은 이미 법률가의 전문 영역 일부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 결과 지난달 15일 미국 창업 초기기업(스타트업) 로스인텔리전스가 개발한 AI 변호사 로스(ROSS)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 대형 로펌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Baker & Hosetler)에 정식 고용됐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AI와 법률서비스를 연동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급명령 헬프미`와 같이 AI를 이용해 지급명령신청서 같은 법률 문서를 작성하는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사람의 일상 언어를 이해하고 초당 10억장의 법률 문서를 분석한 후 질문에 맞는 답변을 만들어 내는 AI 로스, 그리고 AI 변호사 등장은 법조계의 산업혁명에 비견할 만하다. 새로운 판례와 법률을 자가학습해 스스로 진화하는 AI 변호사의 역할이 커질수록 기존 법조인의 고유 영역이 줄어드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소장과 준비서면, 답변서와 변호인 의견서, 변론요지서 같은 법조인의 전유물이 딥러닝 기술로 작성되는 사회가 도래할 때 오히려 일반인의 법률서비스 접근성은 비약 상승하고 법조 시장의 고질화된 문제인 정보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운호 게이트로 물든 우리 법률 시장은 이러한 변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직 모든 것이 물음표일 뿐이지만 보수적 법조계에도 변화 물결은 이미 시작됐다. 과거 IMF가 그러했듯이 AI 법률서비스가 만들어 내는 `알파로` 시대는 기존에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위기의 시대, 혁신가에게는 황금의 시대로 각각 기억될 것이다.
이상민 변호사·헬프미 공동창업자(smlee.lawy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