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김혜수가 맡은 고주연은 오랫동안 연예인으로 살아온 싱글 스타다. 실제 김혜수와 비슷한 설정 덕분에 김혜수와 고주연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설정만 같을 뿐, 고주연은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으로 최적화된 인물이기에 실제 김혜수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대본을 다듬으면서 고주연 캐릭터를 어떻게 소개하고 다룰까 고민했다. 김혜수와 유사선상에 둬서 관객을 흡수할 것인가, 아니면 같은 직업군이되 전혀 다른 캐릭터로 할까 고민했고, 이 중 후자를 선택했다. 고주연은 배우고, 나이도 많은데, 내면은 반비례하게 어리다. 즉흥적인 감정에 사고를 치는데, 현명하게 해결할 사람도 아니다. 배우로서도 실력으로 유지한 입지가 아니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인물이다.”
그동안 김혜수는 영화 ‘타짜’‘도둑들’‘차이나타운’등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였지만, 이외에도 영화 ‘이층의 악당’드라마 ‘직장의 신’을 통해 코미디를 제대로 그려내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영화도 자신 있게 선택했을 것 같지만, 사실 코미디 장르를 한다는 것은 김혜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함께 호흡을 맞춘 마동석이 힘을 실었다.
“나는 의도하지 않게 긴장을 조성하는 사람인 것 같다. 긴장이 필요할 때 나타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만, 불필요할 땐 아주 치명적이다. 캐릭터와 관객 사이에 갭을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불편하고 사람들도 싫을 것이다. 카리스마는 제 기능을 해야 멋진 것이지, 소소한 것을 나눌 때는 필요가 없다. 함께한 마동석은 힘이 있으면서 굉장히 유연한 인간적인 배우다. 게다가 마동석은 본인 것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한다. 배려를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부담으로 느끼면 잘못된 것인데, 마동석은 그 선을 잘 안다. 마동석은 누구와 함께 붙어도 잘할 것이다.”

고주연은 자신의 편이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할 정도로 굉장히 철이 없는 인물이다. 특히 “배우는 철들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은 고주연을 응원(?)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진짜 배우 김혜수는 이 말에 동의하고 있을까.
“‘배우는 철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는 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꼭 배우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청춘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의 순도를 깨끗하게 유지하란 거다. 생각해야할 때 생각 못하고 나이만 먹지 말란 소리인데, 고주연은 자기 깜냥대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웃음) 마음의 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배우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많이 알면서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웃음)”
“하지만 배우 자체가 모순된 것을 하는 직업인 것 같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해야 한다. 나 김혜수는 인생에서 요것밖에 안되는데 캐릭터는 그것을 뛰어넘는다. 내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그가 되어야 한다. 배우의 ‘배(俳)’는 한자로 ‘사람 인’에 ‘아닐 비’가 합쳐진 글자다. ‘우(優)’는 뛰어날 우를 쓴다. 사람이 아닌 일을 뛰어나게 하라는 것인데 단어 자체가 모순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것을 알고 시작하진 않았는데 해보니 그렇더라.”
배우의 역할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있는 그는 30년 째 배우로 살고 있다. 10대에 연기를 시작한 배우가 40세가 훌쩍 넘을 때까지 고민을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그가 배우의 길 한 가운데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30대 때도, 내가 40대까지 연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구체적으로 다른 것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이만큼 할 줄 몰랐다. 10대 때는 너무 어려서 아무런 생각도 못 했고, 20대 때는 뒤늦게 내적인 갈등이 있었다. 20대 때도 연기를 1~2년 한 것이 아니었는데, 뒤늦게 배우란 직업이 애초에 나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나를 부대끼게 만드는 것 같았고, 조용하게 퇴장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주 심도 있게 고민을 했었다. 배우로서 의식을 가지고 일을 했으면 나름대로 성장했겠지만, 나는 그냥 현장이 신기한 애였다. 연기를 어쩌다 했는데, 또 잘 해야 했다. 그래서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래서 좋은 배우가 있으면 연락처를 받아둔다. 뭘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자극이 된다.”
“지금까지 계속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반짝거렸던 시기를 배우로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만둔다면 나중에 ‘내가 잠깐 배우도 했었는데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만뒀어’라고 말하게 될 텐데, 그것만은 안 될 것 같았다. 일말의 의미라도 나 스스로 찾고 싶었다. 그게 마지막까지 걸려서 그만두지 못했고, 아직까지 이렇게 있다.(웃음)”
하지만 김혜수는 대한민국 최고 배우 중 한 명이다. 최근 진행된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도 수상했다. 연기자로서 다 이룬 듯한 그에게 다음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것도 없고, 기준도 없다. 어디까지 해야 이룬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신 항상 현재가 중요하다. 시련이 올 때도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것보다 그냥 마주하면서 잘 보냈으면 좋겠다. ‘도둑들’에서 “난 나랑 안 싸워”라는 대사가 있다. 우리가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공격받을 때가 많은데, 내가 나랑 왜 싸우겠나.(웃음) 그리고 다른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다. 도전하는 것은 좋지만, 그걸 위해 누군가를 애써서 미워하는 것도, 나에게 시비 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너무 할머니 같은 얘긴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그럴 시간에 자신의 장점에 집중하면서 살고 싶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