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로 많이 씻겨 내리긴 했지만 많은 날 서울의 공기는 희뿌옇다. 미세먼지에 오존주의보까지 겹치는 날이 잦아지면서 기침이나 눈 따가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대기 환경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뒤늦게 실감한다. 점점 악화되는 대기 환경처럼 미세먼지를 둘러싼 논란도 점입가경이다. 경유차 사용 억제책을 둘러싸고 정부는 부처별로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느라 바빴다.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미세먼지 특별대책` 내용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정부 부처 간 이해를 조율하지 못했기에 속 시원한 해결책은커녕 실망감만 안겼다.
정부 발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2020년까지 신차 판매량 160만대 가운데 30%인 48만대를 전기자동차·수소자동차 등 친환경차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 차량의 대중화를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충전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지만 우리나라 전역에 설치돼 있는 전기차 충전소는 333곳, 수소차 충전소는 단 10곳뿐이다. 지난 1~4월 국내에 신규 등록된 친환경차는 1만5000대다. 같은 기간 국내에 신규 등록된 전체 자동차 규모가 48만대인 것을 감안하면 친환경차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정부가 제시한 4년 후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장이 지금보다 10배는 커져야 한다. 벌써부터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환경차 선진국인 유럽이나 미국 정책은 어떨까. 유럽은 전기, 수소, 천연가스는 물론 액화석유가스(LPG)와 바이오에너지 자동차까지 대체연료 차량으로 지정하고 개발과 보급을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유차 종주국인 유럽은 최근 경유차 배출가스 가운데 미세먼지, 질소산화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LPG 등 가스차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18년부터 디젤택시 신규 등록을 금지한 영국은 LPG택시를 보급하고 있다. 미국은 어린이 천식을 줄이기 위해 LPG 스쿨버스를 늘리고 있다. 대기 환경 개선과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저감 문제에 대한 실천 해법을 가스차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해외 친환경 가스차 보급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LPG차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푸대접받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LPG차 기술력은 보유하고 있지만 사용 제한 규제에 막혀 차량 보급이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LPG차 운행 대수는 2010년 정점을 찍은 뒤 지난 5년 동안 20만대가량 줄었다. 2000년부터 경유 버스를 대체한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도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경유 버스에 밀려나고 있다. 다행히 정부가 경유버스를 CNG버스로 단계별 대체키로 함에 따라 CNG차 역주행은 멈추게 될 전망이다.
LPG차는 연료 가격이 저렴하고,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현저히 낮다. 강력한 지구온난화의 원인 물질로 지목된 블랙카본은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 미래형 친환경차인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현실적 친환경차로 역할할 수 있다. 국민 건강과 대기 환경 개선을 위해 LPG차 이용을 장려하고 있는 세계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만 불필요한 규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고해 봐야 할 일이다.
공기의 질 문제는 장기 목표 아래 범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관계 부처와 산업계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도 물론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첫 번째 원칙은 당연히 `국민건강`이다. 어떤 정책 목표도 국민건강보다 중요하지 않다. 악화된 환경 속에서는 경제도 삶의 기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당장 실행이 가능한 현실 대안을 찾아내 실천하는 것이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 carng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