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 법안이 쌓이면서 벌써부터 실효성이 의심받는 법안도 늘고 있다. 경제민주화나 양극화 해소라는 정치 취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규제 일변도에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고 포퓰리즘 색채가 짙은 법안도 많아 산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방송·통신 분야에서는 19대 국회 때 폐기된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담당 부처와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단말기 지원금 상향이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지원금 상한제 폐지와 지원금 분리공시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지원금 상한제를 조정하거나 폐지해 고객의 단말기 구매 부담을 줄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원금 상향에 따른 위약금 우려와 상한제를 폐지해도 실제 이동통신사 지원금 상향 가능성이 높지 않고 정책 일관성도 훼손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콘텐츠 분야에서는 여야가 각각 발의한 게임산업진흥법(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이 논란이다. 개정안은 최근 온라인게임들이 아이템 판매 시 흔히 이용하는 랜덤박스의 사용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다. 유료로 특정 아이템을 구매할 수 없고, `복불복` 형식으로 취하는 상품으로 사행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랜덤박스에 대한 구성, 획득 확률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골자다.
게임 업계는 지나친 규제라는 의견이다. 이미 업계 자율로 랜덤박스에 대한 확률 등 일정 수준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자율 공개 기업이 많지 않고 정보도 제한돼 있어서 논란 여지가 많다.
정부 정책과 정반대되는 법안도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발의된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전력 시장의 소매판매 사업자를 한국전력으로 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지는 전력 시장의 민간 개방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저지이지만 현 정부의 전력·가스 시장 민간기업 참여 확대 방침과 전면 배치된다.
업계는 독점을 금지하는 법은 봤어도 독점을 보장하는 법은 처음이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민간 참여와 전기요금 인상 간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통과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산업 전반으로는 고용과 임금 관련 법안이 많다. 임금과 관련해선 다수 의원들이 최저임금 상향을 골자로 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소득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여 보자는 취지다. 아예 관점을 바꿔 임원들의 고임금을 제한한 법안도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최고임금법은 국내 법인의 임직원 최고 연봉이 최저 임금 30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는 국내외의 우수 인력을 끌어올 유인책이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규제로 꼽고 있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도 다수의 의원이 발의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공공기관이나 특정 기준 민간 기업의 청년 의무고용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경기 불황 여건에서 기업 부담 증가, 대기업 구직 쏠림 현상 등을 지적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산업계는 20대 국회 발의 법안 다수가 시장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불공정 행위나 불합리한 산업 구조에 대한 원천적 제도 변화는 필요하지만 결과 측면까지 결정짓는 것은 규제라며 우려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법안은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팀 구성원과 선수들의 급여, 경기 전략까지 규정해 놓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자료:각 의원실 취합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