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으로 구입한 물건에 이상이 있다면 제조사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가전제품, 의류, 가구 등 대부분의 제품은 품질보증기간 이내에 문제가 발생하면 무상수리·교환·환불 등 다양한 보상이 가능하다. 동일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경우에는 교환이나 환불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교환이나 환불이 어려운 제품이 있다. 바로 자동차다. 자동차는 대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비용이 들어 소비자 부담이 크지만 유독 제조사 책임이 가벼운 제조물이다. 차량에 문제가 발생하면 유·무상 수리를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각한 결함이 발견돼도 `리콜`을 실시하는 정도다. 이는 교환이나 환불을 강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권석창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0일 `한국의 레몬법(Lemon law)`이라고 불리는 `자동차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기획단장 시절에 현대자동차 `싼타페` 공시 연비(연료당 주행거리 비율)가 과장돼 있다는 점을 밝혀내 `저승사자`로 불리게 된 권 의원은 소비자 권익 강화를 위해 이번 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미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에서는 `레몬법`이 시행되고 있다. 오렌지인 줄 알고 구입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오렌지를 닮은 아주 신 레몬이었다는 데서 유래한 레몬법은 미국에서 먼저 제정됐다. 미국은 1975년 자동차, 전자제품 등 결함이 있는 제품에서 동일한 고장이 반복해서 발생하면 제조사가 교환·환불해 주도록 의무화했다. 중국은 2013년 자동차 수리와 교체, 반품 등에 관한 `삼포(三包)법`을 도입했다.
권 의원의 이번 제정안은 신차 구입 후 18개월 또는 주행거리 2만5000㎞ 이내에 주요 부품에 대한 고장이 2회 이상, 동일한 일반 부품에 대한 고장이 4회 이상 발생했을 때 완벽하게 고쳐 주지 못할 경우 구매 금액을 돌려주거나 다른 신차로 교환해 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자동차 제작·판매자가 교환·환불 의무를 고의로 회피해 소비자 손해가 발생하면 피해액의 2배를 배상하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자동차 결함을 알고도 숨겼을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와 함께 자동차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자동차소비자권익보호원`, 자동차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한 `자동차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등을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오래전부터 결함이 있는 신차의 교환·환불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은 제기돼 왔으나 소비자를 보호할 마땅한 제도가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인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이 있지만 권고 사항일뿐 강제성이 없다. 이 때문에 중대한 결함이 자주 발생해도 자동차 제작사가 교환·환불을 해 주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소비자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자동차 관련 분쟁은 2014년 171건에서 2015년 243건으로 42%나 급증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9월 발생한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는 소비자 권익 강화의 필요성을 세상에 알렸다.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차량이 국내에서 12만5000여대 판매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소비자 분노는 극으로 치달았다. 지금까지 4500여명이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에는 시가 2억원 상당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구입한 차주가 주행 중에 세 차례나 시동이 꺼졌음에도 신차로 교환해 주지 않는다며 벤츠 판매점 앞에서 골프채로 차를 때려 부순 사건도 발생했다.
권 의원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비약 발전했지만 소비자 피해 구제와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는 미흡한 실정”이라면서 “법 제정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관련 제도가 제작·판매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종은 자동차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