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대개혁] <2>비정규직에 맡겨진 R&D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이 늙어 간다. 50대 연구원이 절반을 넘는 곳도 많다. 정원은 정해져 있고, 기존 연구원은 나가지 않는다. 연구비는 몇 년째 오르지 않는다. 출연연의 노쇠화가 심화하면서 일선 연구 현장에는 비정규직 직원이 자리했다. 대한민국 출연연 체제 40년, 고령화가 심각하다.

연구 현장은 활기를 잃고 있다. 근무 연수에 맞춰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연구비 가운데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가고 있다. 연구개발(R&D) 예산이 늘어도 임금 상승으로 인해 실제 연구에 투입되는 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다. 최근에는 인건비 간접비를 제외하고 연구비를 산정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출연연 대개혁] <2>비정규직에 맡겨진 R&D

◇역피라미드 인력 구조…성과 낼 30대 절대 부족

K연구원의 핵심 부서 인력은 총 55명이다. 이 가운데 50대 이상이 21명(38.1%)이다. 58~61세는 8명(38%)이다.

A 사업부장은 “일을 많이 할 때는 한 번에 150명도 뽑았다”면서 “확실한 인력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인력 구조 왜곡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집계한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출연연 연구직 인력 현황에 따르면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고령화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연과 원자력연은 50~60대 연구직이 전체 43%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이 각각 40%, 39%, 39%. 36%로 나타났다.

직급에서도 역피라미드 구조가 나타났다. 가장 높은 책임급은 선임급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연구 책임급 1058명, 선임급 572명, 원급 105명으로 확연한 역피라미드 구조를 보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도 연구 책임급 190명, 선임 84명, 원급이 2명으로 책임이 선임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대다수 출연연에서 책임급이 선임급보다 많았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직장으로 치면 부장이나 임원이 한참 일할 과장이나 차장보다 많은 것”이라면서 “연구 현장에서 실험이나 모니터할 젊은 연구원이 없어 제대로 된 연구가 힘들 지경”이라고 토로했다.◇원급 연구원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천문연구원은 인력 구조 왜곡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와 기술, 행정직을 모두 합쳐 연구직 원급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 명도 없다. 반면에 연구·행정직을 합쳐 책임급은 76명, 선임급은 88명이다.

1918년 지질조사소로 시작해 2년 뒤 100주년을 맞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직원 고령화가 심각하다. 평균 근속 연수가 2011년 13.6년에서 2014년 14.1년, 2015년 14.3년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젊은 현장 연구원이 부족하자 임시방편으로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한다. 국과연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비정규직 연구원은 2894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대(800명)와 30대(1443명)가 전체 77%를 차지했다. 사실상 젊은 연구원을 비정규직으로 뽑아 공백을 메우고 있다.

비정규직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1~2년 짧게 근무하고 계약이 완료된다. 연구 연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면서 공공기관이 `열정페이`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출연연의 인력 역피라미드 구조는 1980~1990년대 기술 수요가 크게 늘면서 연구원을 대거 채용했기 때문이다. 민간 영역 R&D가 활성되면서 국책연구기관 수요는 점차 줄고 연구비가 정체됐다. IT839 시절이나 녹색성장 기술이 한창이던 때는 25개 출연연이 과제를 따내기 위해 유사한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40~50대 인력 구조도 왜곡이 심각하다. 2000년 34.5%에서 2010년 63.2%, 2015년 66%로 노령화가 빠르게 이뤄졌다. 반면에 20∼30대 연구원 비율은 2000년 65.5%에서 2010년 37.7%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15년에는 30%까지 내려왔다. 앞으로 10여년 동안 출연연 노령화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은 2~3년 후 다른 일자리를 찾아 연구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동안 현장 연구로 쌓은 노하우나 연구 성과가 연구소에 축적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구 예산 중 인건비 비중 꾸준히 증가

출연연의 역피라미드 구조는 전체 R&D 비용 상승 효과를 초래한다.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시니어 연구원은 임금이 생산성을 초과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출연연에는 근무 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늘면서 억대 연봉자 비중도 커졌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연연 억대 연봉자는 총 248명이었다. 기술이전료 수익까지 챙긴 실제 총소득으로 본 억대 연봉자 수는 2373명이다. 억대 연봉자가 없는 비정규직 고액연봉자를 제외한 정규 인력만 따지면 전체 1만1520명의 20% 수준이다. 5명 가운데 1명인 셈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발간한 `과학기술인력의 정년에 대한 이슈와 정책방안`에는 “출연연의 정년 연장 추진 과정에서 젊은 세대의 반대가 주요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고령 연구자들이 조직 차원에서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든 문제를 연구팀 내에서 대응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연구자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훨씬 크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직 고령화가 신진 연구자를 비롯해 젊은 연구자의 업무를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과연 관계자는 “자체 승인 인력의 확대로 선임급 이하 젊은 직원이 유입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속 협력하고 있다”면서 “현재 출연연 명예퇴직 보상 프로그램도 사기업은 아니더라도 공기업만큼의 보상을 현실화해야 인력 순환이 활발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전임 원장이 퇴임 전에 신입 직원을 뽑자 부서장들이 신입을 자기 센터나 연구소로 데려 가야 한다고 아우성을 친 적이 있다”면서 “어느 부서장은 `우리 팀 막내가 49세라며 신입을 무조건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2015.12 기준(자료 NST)

(자료 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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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범 과학기술 전문기자 hbpark@etnews.com,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