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한전, “전기만 팔아선 미래 없다”

한국전력공사는 100년 넘게 하나의 상품을 우리 영토 안에서 팔아 코스피시장 시가총액 2위에 올랐다. `산업화 동력`으로서의 역할과 `전력 복지`라는 두 가지 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성장을 거듭해 왔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11조원을 넘기며 `황금기`을 맞은 것 같지만 사실 한전은 갈림길에 섰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100년 성장의 미래를 계속 잇느냐, 공룡처럼 변화 앞에서 스러지느냐가 목전에 닥친 문제다. 한전이 변하고 있다. 그동안 좋은 품질의 전기를 국가 전반에 저렴하게 공급하는데 집중했다면 이젠 전기 판매 이외의 새로운 사업을 키우는 데 힘을 더 쏟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변화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한전 지역본부별 특화사업 현황
한전 지역본부별 특화사업 현황

◇스마트에너지 산업 창조자로 나서다

2014년 12월 한전은 본사를 전남 나주로 옮기면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공기업 이미지를 표방했다. `스마트에너지 크리에이터 캡코(KEPCO)`라는 새 비전은 전력 판매 이상의 새로운 에너지 비즈니스를 창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후 지금까지 본사 주변의 에너지밸리 조성과 2조원 규모의 전력 신산업 펀드 조성 등 국가 에너지 산업의 허리를 맡을 강소기업 육성에 전력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본사를 넘어 지역본부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전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주도라는 원대한 계획 아래 전사 차원의 `업(業) 변화`를 추진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해 `사업소 특화사업`을 다각도로 벌이고 있다.

에너지 신산업 육성, 에너지밸리 조성과 같은 본사 차원의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본부별로 △기후변화 대응 탄소감축사업 △에너지 신사업 개발 △공유경제·특화 서비스 개발 △신기술 적용 스마트 전력망 구축의 4개 분야별 총 35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본부와 건설처별 지역 여건을 고려한 특화사업 추진으로 새로운 업역 발굴과 유관 기관과의 사업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전력 시장 개방과 기후변화 대응 등 향후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다. 석탄화력 시대는 저물고 신재생 에너지와 분산 전원의 역할이 커지면서 일반 소비자들도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 프로슈머 시대에 맞춘 변화다.

그동안 지역본부의 핵심 업무는 담당구역별 전원설비 관리였다. 설비 노후화와 불량에 따른 정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지·관리에 힘쓰고, 유사시 얼마나 빠르게 전력 공급을 재개할 수 있느냐가 평가 기준이었다. 이제는 여기에 본사 차원에서 추진해 온 해외 사업, 중소기업 동반 성장, 탄소 감축 사업에서 연구개발(R&D) 영역까지 개별 지역본부들이 나서고 있다.

한전은 이번 사업소 특화사업 실행을 통해 지역별 미래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지방자치단체 및 유관 기업과의 협력으로 사업 시너지를 창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가치를 나누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새로운 업, 제품 아닌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

사업소 특화사업 추진은 2001년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이은 두 번째 변화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발전과 송배전, 판매 등 모든 전력 수급 시스템을 총괄해 온 한전은 2001년을 기점으로 발전 부문을 분리했다. 경쟁을 통한 경영효율화를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한전의 변화는 국가 에너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발전에 제한된 시장 개방이었지만 많은 민간 발전사가 등장했고, 가스 등 연료를 직접 구매하는 사례까지 생겼으며, 전기세를 전기요금으로 바꾸는 고객 인식 개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번 지역본부별 신사업도 전력 시장에 민간 참여라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밀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일부 본부들이 추진하는 고객 에너지 컨설팅과 기술 개발 사업들은 앞으로 치러야 할 민간과의 경쟁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에너지 프로슈머 등장과 스마트그리드 등 민간 전력 시장 참여가 불 보듯 뻔한 새로운 시장 상황에서 선제 대응에 나선 셈이다.

전사 차원으로는 본사는 해외 에너지 시장 개척과 에너지 신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기존에 하던 국내 사업들을 각 지역본부가 책임지며 각자 먹거리를 마련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한전 본사는 캡코 에너지 벨트 구축을 목표로 전방위 해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해외 사업에서 매출액 4조9000억원, 순이익 4600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아랍에미리트(UAE), 중국 등 세계 21개국 36가지에 이른다. 최근에는 캡코 브랜드를 활용한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 범위도 넓어졌다.

사업소는 단순히 지역별 본부를 넘어 하나의 그룹사와 같은 포지셔닝을 하게 된다. 자체 수익 사업은 물론 국내외 기업들과의 협력 등도 모색한다. 중소기업을 발굴·육성하고 지역사회 공헌 활동도 펼친다. 본사 차원에서 하던 일들을 이젠 지역본부 스스로 알아서 추진하고 차별화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간다.

한전 관계자는 “앞으로는 더 이상 한전에 전력을 팔지 않아도, 한전의 전력을 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면서 “민간에게 개방된 시장 환경에선 전기 판매 경쟁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공기업의 역할을 찾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