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결승전을 끝으로 막을 내린 드론 레이싱 대회 `D1그랑프리`에서 실력파 신인이 대거 등장했다. 경력 3개월~1년에 불과한 신인 선수가 상을 휩쓸었다. 중학교 1학년 14살 선수는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3위 수상자는 `침착함`을 비결로 내세웠다.
대회 우승자 이규봉 선수는 결승 경기 중반까지 3위에 머물렀다. 4위 전재영 선수가 초반 추락한 것을 감안하면 출발은 사실상 `꼴찌`였던 셈이다. 중반까지 1, 2위를 달리던 한동욱, 조성현 선수를 바짝 추격하다 두 선수 드론의 충돌을 틈타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다.
이규봉 선수는 “출발에서 다른 선수에게 뒤처졌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다른 선수를 쫓아가자는 심정으로 달렸다”며 “예선부터 결승까지 계속 긴장 속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끝까지 욕심 부리지 않고 침착하게 비행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소감은 겸손했지만 기록은 훌륭했다. 이 선수가 세운 87초 랩타임은 본선과 결승을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드론 레이싱 대회 첫 입상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상금은 4000만원. 국내 드론 레이싱 대회 사상 최고액이다. 이규봉 선수는 지난해 처음 드론 레이싱에 입문한 신인이다. 애초 우승은 기대하지 않았다.
이 선수는 “기체 구입, 대회 참가 비용을 형님에게 빌렸는데 만약 우승하면 상금을 모두 주겠다고 말해버렸다”면서 “막상 우승하고 보니 상금이 너무 커서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늘 떨고 긴장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떨어보자는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한동욱 선수는 2위에 머물렀지만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올해 나이 14살. 중학교 1학년이다. 드론에 입문한 지는 불과 3개월이다. 상대 선수와 충돌로 추락하기 직전까지 선두를 다투며 우승까지 넘봤다.
한 선수는 경기 내내 대범한 비행을 선보였다. 다른 선수 레이스에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격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드론 조종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게 꿈이다. 1100만원에 달하는 준우승 상금은 드론에 재투자할 뜻을 내비쳤다.
한 선수는 “다니고 있는 우슈 도장 관장님 도움으로 드론에 입문한지 3개월 됐고 대회 참가는 처음”이라며 “드론 조종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게 꿈인데 상금 역시 진로와 관련된 곳에 쓰고 싶다”고 밝혔다.
조성현 선수도 레이싱 경력 1년 남짓 된 신예지만 3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결승에서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이번 경기 최고 난코스로 꼽혔던 관중석과 운동장 사이 게이트를 고속으로 통과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마지막 난코스인 1단-2단-1단으로 이어지는 연속 게이트에서 한동욱 선수와 충돌로 추락했다. 한동욱 선수와 차이는 근소했지만 게이트 통과 수에서 밀려 3위 성적을 받아들었다.
조 선수는 “완주를 목표로 달리다 어느새 선두를 차지했는데 생각보다 후발 주자와 차이가 적었다”며 “마지막까지 차분히 비행했지만 뒤따라오는 선수와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재영 선수는 본선 경기에서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아쉽게 4위에 머물렀다. 결승 때도 출발이 좋았다. 관중석 진입이 가장 빨랐다. 첫 관문을 힘차게 통과했지만 게이트 장애물에 부딪히며 추락했다. 전 선수는 앞서 본선 랩타임 97.030초를 기록하며 우승 후보로 부상했다. 90초대 기록은 본선 참가자 중 전 선수가 유일했다.
이번 대회는 충돌과 파괴의 연속이었다. 본선 진출자는 참가자 절반 이상이 추락한 예선 코스 완주자들이다. 이들도 최고 난도 코스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빠르게 고도를 낮추며 운동장으로 진입해야 하는 8번 게이트는 `버뮤다 삼각지대`로 불렸다. 굉음을 내며 돌진하고 추락하는 드론이 진짜 F1 레이스를 방불케 했다. 진행요원은 부서진 기체 잔해를 회수하느라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녔다.
한 본선 참가자는 “일반적인 드론 레이싱은 넓은 평지에서 진행되는데 스타디움 관중석까지 코스로 활용하는 건 이례적”이라며 “워낙 변수가 많다보니 그만큼 스릴은 있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회는 전자신문과 드로젠이 공동 주최한 첫 대회다. 국내 최대 규모인 총 상금 1억원을 내걸었다. 하반기 중 2회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흥신 드로젠 대표는 “D1그랑프리는 드론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첫 대회”라며 “국산 스포츠 드론 대회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