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 정보시스템 해외 진출이 속도를 못 낸다. 분당서울대병원이 700억원 규모 병원정보시스템(HIS)을 수출한 이후 `후속타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대형병원조차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는 수출용 의료시스템 개발은 꿈도 못 꾼다.
1일 병원 업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빅4`로 꼽히는 대형종합병원은 이르면 올 연말 완료를 목표로 차세대 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의료정보 활용, 프로세스 개선 등을 목표로 시스템을 재개발한다.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한 `수출용` 버전은 없다.
2014년부터 착수한 서울삼성병원은 지난달 차세대 시스템을 오픈했다. 약 1000억원을 투입해 의료정보 활용을 위한 임상데이터웨어하우스(CDW) 구축, 의료정보 표준화 구현 등을 목표로 했다. 9월까지 안정성 검증을 마치고 본격 가동한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도 각각 연말과 내년 상반기 오픈을 목표로 차세대 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약 250억원을 투입해 WPF 기반 사용자경험(UX) 개선 등을 추진한다. 서울아산병원은 HIS `아미스`를 2.0에서 3.0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전자의무기록(EMR)을 포함한 의료정보체제 전반을 개선한다.
국내를 대표하는 첨단 의료 시스템 구축이지만 수출과 연계한 곳은 없다. 핵심 솔루션인 HIS만 하더라도 수출을 위해서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다국어 지원, 국제표준 준수, 해외 병원 프로세스 반영 등이 필요하다. 국내서 개발한 HIS 중 이를 충족한 솔루션은 분당서울대병원 `베스트케어`가 유일하다. 현재 차세대 사업을 진행 중인 병원 중 이를 반영해 개발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HIS는 수출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장기적으로 수출 모델이 될 수 있겠지만 검토 중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대형병원조차 수출용 의료 시스템 개발을 주저하면서, 분당서울대병원을 잇는 성공사례도 나오지 않는다. 2014년 분당서울대병원 컨소시엄은 자체 개발한 HIS를 사우디아라비아 왕립병원에 700억원 규모로 공급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중동, 미국, 유럽 등 다양한 국가를 대상으로 추가 구축 사례를 타진한다. 이를 제외한 다른 병원은 내수용 의료시스템 개발에 그친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분당서울대병원도 수출용 HIS 개발은 정부 지원을 받았기에 가능했다”며 “자체 예산으로 오랜 기간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수출용 솔루션 개발은 불가능하며, 국내에서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11년 정부 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WBS) 과제 대상으로 선정돼 70여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결과물인 공통 플랫폼을 활용해 HIS `베스트케어`가 탄생했다.
병원 업계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수출을 확대하고, 의료IT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병원은 국가의료정보표준(ONC-HIT)을 준수한 HIS를 도입할 경우,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검증된 HIS를 도입해 적은 비용으로 병원 정보화 수준을 높인다. 신규 HIS 개발 부담도 덜 수 있다.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은 “미국 정부처럼 도입이나 개발을 장려할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중동, 동남아시아 등 한국 의료솔루션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솔루션 개발을 지원해 수출모델로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