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보안업계 노력으로 보안 산업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핀테크는 금융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은 금융사 고객채널 다양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출현한다면 금융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개키기반구조(PKI) 보안업계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PKI 기술에 기반을 둔 공인인증서는 1990년대 말 `전자서명법`에 근거해 만든 제도다.
당시에는 첨단 보안기술로 인정받았다. 국내 온라인 전자금융 활성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지금 PKI는 더 이상 보안기술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만만치 않게 커졌다. 해외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고 간편결제 비중이 커짐과 동시에 일회용 비밀번호(OTP), 생체인식 등 공인인증서 대체 기술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PKI 기술은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일까.
사실 PKI 기술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게 공인인증서만은 아니다. 전자청약서나 전자부동산계약서, 전자여권, 생체인증 기반 기술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기술 제품 제작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PKI 보안기술은 디지털 제품의 진위를 즉시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국가기록원은 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100년 이상 보관하는데 100년 후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PKI 기술을 활용한다.
이처럼 PKI 기술이 여전히 쓸모가 있음에도 공인인증서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바람에 관련 업계는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활로를 찾지 못한 업체도 많다.
기술은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변신한다. 카메라 필름을 만들던 후지필름은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자 필름 제조에 축적된 기술을 응용, 화학기술 선도 기업이 됐다.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BMW는 항공 산업이 위축되자 항공엔진기술을 응용해 자동차 산업 최고 기업이 됐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PKI 기술은 선진국에서 먼저 도입했지만 응용기술은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본에 수출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추진하는 차세대 보안기술 생체인증표준(FIDO)을 미국과 동등하게 개발할 수 있는 기술 경쟁력도 확보했다. 우리가 지닌 능력과 산업 변화의 본질을 통찰한다면 산업의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여론이 나빠졌다거나 환경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고 포기한다면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기반 기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기술이 등장한 이유와 그 기술이 발전해 온 과정,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기술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않은 채 욕하고 버리는 것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반 기술을 키우는 데에는 엄청난 투자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도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기반 기술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정부나 산업계가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시행착오를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수만 IT미디어연구소 원장 smchoi20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