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이 사상 처음 400조원을 돌파한다. 정부가 꾸준히 재정 확장 정책을 유지해온 결과다. 400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분야는 다양하지만 결국 초점은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이다. 박근혜 정부가 초지일관 강조해 온 부분이다.
분야별로 희비는 엇갈렸다. 복지, 문화 부문은 예상대로 예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 반면에 체질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연구개발(R&D) 부문의 예산 증가는 기대에 못 미쳤다. 산업·에너지 부문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예산이 축소된다.
내년도 예산 편성 방향은 올해와 거의 비슷하다.
◇예산 첫 400조원 돌파…재정 건전성, 괜찮나
정부는 내년도 예산 규모를 400조7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사상 첫 400조원 돌파지만 그동안 추세를 고려하면 이례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도 그동안 예산 규모를 꾸준히 늘려 왔기 때문이다.
연간 예산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처음 100조원을 돌파했다. 4년 후인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200조원을 넘었다. 6년이 지난 2011년 이명박 대통령 때 3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다시 6년 만인 내년에 400조원을 돌파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출을 계속 늘리는 것은 경기 침체 때문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곳간을 풀어 각종 사업 활성화와 일자리 만들기에 나서기 때문이다. 가계와 마찬가지로 정부도 지출이 늘면 살림살이가 빠듯해진다. 지출이 는 만큼 수입이 늘지 않으면 빚을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괜찮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내년 내수가 회복되고 법인 영업 실적이 개선돼 총수입이 올해보다 6.0% 늘어난 414조5000억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총수입은 국세수입, 세외수입, 기금수입, 세입세출 외 수입 등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국세가 올해보다 18조8000억원 많은 241조8000억원(8.4% 증가)이 걷힐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경기가 활성화돼 세금이 많이 걷힐 것으로 보이니 지출을 늘려도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재정 건전성도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정 수지는 종전 계획보다 0.3%포인트(P)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기존의 2015~2019년 계획에서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수지 적자 비율을 2%로 예상했지만 이번에 1.7%로 낮췄다. 국세수입 증가, 세계잉여금을 활용한 국가채무 상환 등 영향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15~2019년 계획(41.0%)보다 0.6%P 개선된 40.4%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세수 증가 등 정부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장밋빛 전망으로 지난해까지 `세수 펑크`를 3년 연속 기록했다. 올해는 세수 결손을 면했지만 내년에 다시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세수 달성에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복지·문화 늘지만 산업·에너지는 내년에 축소
총 12개 분야 가운데 올해보다 예산이 줄어드는 분야는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사회간접자본(SOC), 외교·통일 3개뿐이다. 보건·복지·노동, 교육 등 나머지 9개 분야는 0.1~7.4% 예산이 늘었다.
박근혜 정부가 꾸준히 복지를 강조해 온 만큼 보건·복지·노동 예산이 크게 늘었다. 복지 예산이 130조원을 돌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 가운데 일자리 분야 예산에 올해(15조8000억원)보다 1조7000억원 많은 17조5000억원이 배정됐다.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게임(451억원→635억원), 가상현실(신규 192억원), 바이오의료기술개발(1950억원→2616억원) 등 문화·보건·의료 부문 투자를 확대한다. 청년 창업자에게 교육·사업화·보육 등 창업 전 단계를 연계 지원하는 `창업성공패키지`에 새롭게 500억원을 투입한다.
R&D 분야는 올해보다 1.8% 많은 19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사실상 동결에 그친 올해보다 상황이 나아졌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R&D 분야는 예산 투입 확대보다 효율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늘어난 예산은 미래 먹거리 발굴에 중점 투입한다.
범부처 합동 수행이 필요한 9개 R&D 프로젝트에는 총 300억원을 투입한다. 자율주행차 등 성장 동력 분야에 95억원, 미세먼지 등 국민행복 분야에 205억원을 각각 배정했다. 스마트공장을 종전 1245개에서 내년 1750개까지 확대하고, 청정에너지 6대 분야에는 5844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 예산은 눈에 띄게 늘었다. 일반·지방행정 분야를 제외하면 증가율이 가장 높은 6.9%를 기록했다. 총 7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주요 인프라 구축 마무리 와 함께 문화벤처 육성프로그램 지원 대상을 대폭 확대한다. 평창올림픽 주요 인프라를 완공하는 한편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동계올림픽 체험관과 사물인터넷(IoT) 시현단지 신규 조성에 114억원을 투입한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줄어든다. 에너지 절약시설 설치 융자, 석유 비축사업 출자, 신성장 기반 자금 융자 등이 축소된다.
하지만 부진한 수출 회복을 위한 예산은 늘렸다. 수출 기업에 바우처를 제공, 기업이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수요자 중심 지원 체계 마련에 새롭게 1778억원을 투입한다. 수출 지원 서비스와 수출 지원 기관 등을 안내하는 `수출지원 스마트앱`을 개발한다. 글로벌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전용 R&D 사업을 신설(60억원)하고, 월드클래스300 사업을 확대(853억원→1137억원)한다.
이 밖에 내년도 예산은 지방 배정분이 많이 늘어난 게 특징이다. 교육 부문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41조2000억원→45조9000억원), 일반·지방행정 부문에서 지방교부세(36조1000억원→40조6000억원)가 크게 늘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