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제주 서귀포 상효동 라이트리움에서 색다른 전기차 행사가 열렸다. 처음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실제 사용자나 구매 희망자인 소비자가 기획하고 만든 `전기차 이용자 포럼 & 페스티벌(EVuff@Jeju)`이다. 당초 400명 참가가 예상됐던 행사엔 제주도 내 전기차 이용자와 일반인 700명이 참석했다. 전기차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이 모임 제안자인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창업자는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 중 대부분은 오해가 아닌 거짓말이 많다”며 이에 올바른 정보 전달과 인식의 전환을 위해 소통의 공간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충전시간도, 충전인프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기차 이용자가 느끼는 고충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부족한 충전인프라도 아니고, 비싼 차 가격이나 짧은 주행거리도 아니었다. 전기차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정부의 탁상공론적 행정이 오히려 더 큰 장벽이었다.
◇전기차 안팔리는 이유, 현장에 답이 있다.
행사 하이일라이트는 전기차 이용자 눈높이에서 열린 `전기차가 왜 보급이 안되는가`와, `전기차 구매 후 문제점은 없나`를 주제로 두 차례 열띤 토론이었다. 전기차 이용자 실제 경험에서 나온 현실적인 이야기와 전기차 민간 보급 확대를 바라는 바람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첫 토론회에선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현실성 없는 정부 행정에 아쉬움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김성태(BMW·i3 이용자)씨는 “우리 전기차 이용자들은 짧은 주행거리나 충전기 부족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데도 언론이나 전기차를 타보지도 않고 짐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자동차 영업사원 조차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잘 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심지어 어떤 영업점은 보조금 등 신청 서류조차도 없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접점에 있는 영업사원 조차도 잘 못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찬진 한컴 창업자도 “스마트폰도 전기차만큼 사용이 어렵지만 주위에 잘아는 사람이 도와줬기 때문에 시장이 더욱 성숙해질 수 있었다”며 “전기차를 타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운 데 전기차 관련한 부정적인 이야길 듣는다면 말한 사람이 진짜 전기차를 타본 사람인지 타보지도 않은 사람인지 먼저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타보지도 않은 사람들 말로 오해해 전기차 구입을 시도조차 못하는 일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무작정 충전 인프라를 늘리기보다는 현실적인 행정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홍정표(르노삼성·SM3.Z.E.)씨는 “정부가 민간 보급에 나서고 있지만 전기차를 사려면 보조금부터 충전기설치에 따른 현실적인 구매 가이드조차도 없어, 개인이 직접 지자체에 연락하고 조사하는 수고가 많다”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구매 가이드부터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소`라는 명칭이 시장 거부감을 줄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성태씨는 “`전기차 충전소`하면 대부분 LPG 충전소와 같은 위험할 수 있는 거대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충전소와 충전기 용어부터 정리하면 소비자들 거부감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정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성수(닛산·Leaf)씨는 “매달 30만원씩 드는 유류비가 전기차로 바꾼 후 전기요금 5만원으로 줄면서, 남은 차액으로 할부금까지 낼수 있어 전기차 이용에 크게 만족한다”며 “하지만 각기 다른 충전기를 이용하려면 카드를 세 번 이용할 만큼 복잡하고 불편했는데, 정부 정책은 언제, 어떻게 바뀌는지 알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사소한 것부터 바꿔나가자”
전기차 이용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었다. 충전인프라 확대나 보조금 등 물질적 혜택을 늘리자는 의견은 들을 수 없었다.
이원재(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씨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알리는 이정표엔 주유소·식당 표시는 있어도 EV 충전기 표시가 없어 불안할 때가 많고, 휴게소를 찾았다 해도 충전기 위치가 제각각이라 찾기도 힘들다”며 “휴게소 알림 이정표에도 충전기 표시나, 휴게소 진입 후 충전기 위치 안내판 같은 사소한 것부터 개선한다면 이용자 불안을 크게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국에 구축한 공용충전기 이용에 따른 불편함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효진(i3)씨는 “처음엔 충전기 사용법이나 전력량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고 공용 충전기 찾는 일로 남편과 자주 싸우면서 터득한 끝에 이젠 나름의 전문가가 됐다”며 “하지만 여전히 환경공단 홈페이지나, 콜센터 이용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충전기 안내 사이트에 고장 난 충전기 표시가 안됐거나, 밤 늦은 시간 급한 나머지 미안한 마음 콜센터를 이용하지만, 전화 받지 않아, 애를 먹을 때가 많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최근 제주 등에 전기차 이용이 늘면서, 공용충전기 이용 대기시간이 늘고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용자 의견도 나왔다.
홍정표(SM3.Z.E.)씨는 “제주는 이제 공용충전기 이용에 대기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며 “반면에 사용이 거의 없는 충전기도 많은데, 이용이 많은 지역에는 충전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이용이 많은 지역에 효율적인 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한국전력은 환경공단과 함께 개선에 뜻을 밝혔다.
손병현 한전 차장은 “충전기 대기자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용자도 적지 않다”며 “환경공단과 협력해 충전기 사용자 인증 호환이나 개별 소유한 충전기 위치 등으로 온라인에 통합해 운영하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