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경제적으로 혼란한 시기다. 외교적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신산업을 주도하는 미국과 대량생산으로 맞선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에 처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 벽에 갇힌 지도 벌써 10년째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혼란을 헤쳐나갈 일 역시 사람의 몫이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비치는 거울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를 진단해 현재와 미래의 인재상을 찾는 일은 당면 과제다. 과거를 연구한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만나 과거와 현재 인재상에 대해 물었다.
-그간 역사적으로 묻혀진 인재에 관한 글을 많이 쓰셨다. 소장님이 보는 인재의 기준이 무엇인가.
▲인재는 사회와 관계 속에서 정해진다.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 인재다.
사회가 제대로 방향을 정해 나아갈 때는 좋은 인재가 사회에 진출해 꿈을 펼친다. 동양 사회에 천하의 인재가 조정에 있다는 말이 있다. 천하의 인재가 서로 나서 조정에 자신의 뜻을 펼치게 하는 좋은 시대를 말한다. 정의와 인재 수용의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에서 갈 때를 말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는 그러지 못한 때가 많았다. 그래서 많은 인재가 역사에 묻히고 불우한 최후를 맞았다.
-묻혀진 인재란 누구고 어떤 분들인가.
▲조선시대에 유성룡이나 김육, 다산 정약용 형제 등은 지적 통찰력을 가지고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던 분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 사회는 이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물론 유성룡은 선조때 영의정까지 지내며 시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역시 말년은 좋지 않았다. 효종때 우의정으로 임명됐던 김육은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반 지주의 반대로 실패했다. 정약용 형제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를 앞선 천재가문이지만 조선 후기 노론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반대편에 서 결국 불우한 최후를 맞았다. 이들 외에도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했지만 사회가 그들을 막은 사례가 조선부터 근대까지 수두룩하다.
-인재가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회와 사람에 애정을 가지고 공공선을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다. 유성룡, 김육, 윤휴, 정약용·약전·약종 형제는 사회와 그 구성원에 애정을 가졌다. 단순히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자신의 힘을 쓰지 않았다.
여기에 지적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이는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이 뒷받침될 때 사회를 이끄는 인재가 된다.
대한제국 시절 매국을 했던 이완용·송병준 등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그들에게 국가나 사회 구성원은 눈앞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들 대다수는 당시 지배계층인 노론에서 비롯됐다. 조선의 유교철학이자 중국 명나라를 군주의 나라로 섬기는 주자학을 숭배하던 인물이 그들의 선조다.
아울러 인재는 일반인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우월한 모습을 갖춰야 한다.
-근대에도 지적 통찰력을 갖춘 분들이 있었나.
▲물론이다. 독립운동가인 석주 이상룡은 동양은 물론이고 당대 서양 철학 중심인 쇼펜하우어, 제임스 밀 등을 섭렵하며 임시정부 민주공화정의 기틀을 세운 분이다. 만주로 망명해 1911년에 그곳에서 경학사를 만들었다. 교민자치기관인 경학사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단초가 됐다. 임시정부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으로 국체를 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구한말 서양 정치이론과 철학, 대외 관계에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다.
이상설, 이회영 형제, 김규식 선생 역시 당대 최고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공선을 향해 이상을 실현했던 분들이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한편 높은 도덕성까지 갖췄다. 그들은 진보나 보수로 갈리기는 했지만 이념에 사로잡히기보다 국가의 독립과 안녕이란 공공선을 위해 때로 뭉쳤다. 프랑스가 이차대전 이후 보수와 진보로 갈렸지만 모두 국가라는 대의명분을 져버리지 않았기에 타협과 통섭이 이뤄졌다. 관용으로 통하는 똘레랑스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우리사회에 인재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한 견해는.
▲우리나라에 세계 일류기업이 있지만 아쉽게도 글로벌 인재가 없다. 선진 OECD 국가라고 하지만 평화상을 제외하곤 노벨상을 탄 인물이 없다는 점도 이를 말해준다. 이는 지식의 깊이가 하향 평준화된 탓이다. 지적 우위에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물론 인터넷을 매개로 지식 나눔이 활발해진 것도 이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와 통찰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임은 최고학부인 대학이 져야 한다. 이제 국가를 생각하는 지도자와 인재가 등장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경제란 외형 면에서 성취를 했다면 이제 이에 걸맞은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다.
-우리 사회 인재 양성과 등용시스템을 진단한다면.
▲마치 당쟁과 세도청치가 극심했던 조선시대 후반을 보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카르텔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벌과 지역, 이념으로 뭉친 집단이 경제와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교육시스템이나 인재채용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초등학생 이후 학생이 독서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지적 통찰력을 갖춘 인재를 만들기 위해선 폭넓게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런 구조가 안 된다. 붕어빵을 찍어내듯 획일화된 교육이 몰고 온 비극이다. 이러한 교육시스템은 국민소득 1000달러에서 2만달러까지 달려오는데 효과를 발휘할지는 몰라도 2만달러 이상에선 안 된다. 상상력을 갖춘 창의 인재를 길러내려면 교육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인재 등용시스템 역시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을 말해 달라.
▲ 어느 시대와 제도를 막론하고 사회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지적 통찰력을 갖춘 인재에서 나온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역사와 공공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 도덕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 4차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은 기술적 이해가 깊은 인물을 찾아 배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정치적으로 유연해야 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주자학을 넘어 양명학을 수용해야 한다는 사람이 나왔지만 이단으로 몰렸다. 사회가 인재를 받아줄 유연성이 부족했던 탓이다. 더불어 창의적 인재가 사회 곳곳에 등용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보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1961년생으로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숭실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199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사학에 뜻을 두고 답사와 탐구를 통해 얻어낸 고조선부터 현대에 이르는 사료를 근거로 서적 출판과 강연에 매진했다. 식민사학에 맞서는 뚜렷한 관점과 한국사의 핵심쟁점을 한국적 관점에서 풀어낸 역사학자다.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사도세자가 굼꾼 나라` `조선왕을 말하다` `조선왕 독살사건`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 `윤휴와 침묵의 제국`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김종서와 조선의 눈`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희영과 젊은 그들`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사` 등 근대를 중심으로 수십권의 역사서와 소설을 펴냈다.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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