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밀정’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교란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군이면서 독립군을 돕는 이정출(송강호 분)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김지운 감독은 지엽적인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그 시대를 관통했던 혼란 속에서 갈등하고 고뇌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망했다. 송강호 역시 이번 영화를 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을 인물이 이분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꼽았다.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또 다른 아픔을 보는 것이다. 마지막에 이정출이 누군가의 시신을 보고 고통스러워하는데 개인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 민족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실존인물 황옥을 모티프로 했다. 황옥은 일본군이었지만 독립군을 도운 인물이다. 의열단이 일제 기관을 파괴하고 친일파 암살을 위해 무기를 국내로 반입할 때 이를 돕다가 체포당했다. 하지만 학계는 이 사건을 황옥이 일본군의 밀정 노릇을 하며 독립군을 염탐한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그는 역사적으로 판단되지 않은 인물이다. 이번 영화에서 황옥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할 수 있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입장을 정리해서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보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도 진실을 모른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설이 있기는 하지만,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밀정’은 황옥이란 인물을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회색빛으로 살아왔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시대의 특징상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 채워져 있지만, 장면 곳곳에는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만의 웃음 포인트가 구성돼 있다. 송강호는 별거 아닌 것을 별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배우다. 특히 공유와 특별출연한 이병헌과 함께 삼자대면해 술을 먹는 신은 사실 지문으로만 놓고 본다면 ‘술을 계속 먹는다’ 정도일 뿐이다. 딱히 별거 아니지만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유머는 자연발생적이다. 비극에서도 웃음이 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역시 조금 더 오락적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영화 본질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로만 이야기 한다. 술 먹는 신은 재밌게 찍은 장면 중 하나다. 감독님이 편집으로 더 절제를 하신 것 같은데, 잘 하셨다고 생각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나와 이병헌을 8년 만에 함께 만나니까 반가움도 있었을 것이다. 애드리브 같은 경우엔 김지운 감독이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에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과 1998년 ‘조용한 가족’, 2000년 ‘반칙왕’,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네 번째 만났다. 뿐만 아니라 박찬욱 감독과는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5년 ‘친절한 금자씨’, 2009년 ‘박쥐’를, 봉준호 감독과는 2003년 ‘살인의 추억’, 2006년 ‘괴물’, 2013년 ‘설국열차’를 찍는 등 한 번 인연을 맺은 감독과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임은 확실하다.
“다른 배우들도 같은 감독과 계속 작업을 하더라.(웃음) 좋은 인연을 맺어가는 것 같다. 김지운 감독은 20년 동안 같이 걸어왔지만, 작품에 대한 태도든 언제나 놀랄 만큼 바뀌어 온다. ‘밀정’도 작가나 연출적인 욕심 대신 오롯하게 대중들에게 이야기 자체를 전달하고자 한 첫 번째 영화라고 했다. 미국에서 했던 ‘라스트 스탠드’도도 마찬가지고, ‘악마를 보았다’ 등을 봐도 한 곳에 머문 적이 없지 않나. 말은 쉬워도 놀라운 일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예술가로서 놀랍고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송강호는 2013년 ‘설국열차’ 이후 같은 해 ‘관상’ ‘변호인’, 2015년 ‘사도’까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현재 개봉한 ‘밀정’ 역시 6일 만에 200만 명 이상을 모으며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좋은 연기만큼이나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그의 안목 역시 놀랍기에 현재 촬영하고 있는 영화 ‘택시운전사’나 하반기에 크랭크인 하는 영화 ‘제5열’에 대한 기대도 모아지고 있다.
“작품을 선택하는 방법은 시나리오도 있고 감독을 볼 때도 있다. 그런데 운도 있다. 시나리오가 정말 좋아도 마음에 안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러다가 또 어느 시기가 되면 확 들어오기도 한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시기에 못 받아들인 시나리오가 대박이 나기도 한다. 아깝다가 아니라 ‘이런 경우가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도 지금까지 운이 많이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