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일명 ‘피리 아저씨’로 불리는 권병호.
그는 케이윌, 아이유, 바비킴, 장범준 등 여러 굵직한 가수들의 콘서트 및 레코딩 뿐만 아니라 MBC ‘일밤-복면가왕’, ‘나는 가수다’, KBS2 ‘불후의 명곡’, tvN ‘노래의 탄생’, Mnet ‘슈퍼스타K’, ‘보이스코리아’ 등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멀티 악기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멀티 악기 연주자.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생소하다. 악기면 악기지 멀티 악기는 대체 뭘 뜻하는 걸까.
“멀티 악기라는 건 제가 만든 개념이에요.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요즘에는 ‘멀티(Multi)’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다보니 이질감 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멀티라는 단어 그대로 여러 개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멀티 악기 연주자에요. 공연 끝나고 화면에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악기 이름이 너무 길어서 영어로 멀티 인스트루먼트(Multi Instrument)라고 쓰다가 멀티 악기가 편해서 그렇게 3~4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죠.”
모든 종류의 악기를 다룰 줄 알지만 ‘피리 아저씨’라는 별명에 걸맞게 권병호의 주 종목은 입으로 부는 악기다. 여러 명곡들이 전주가 그의 입에서 탄생하기도 했다.
“대중음악을 연주할 때 하모니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방송에서는 시각적인 요소를 많이 원해서 아코디언 연주도 많이 했어요. 또, 플루트도 자주 연주하고, 이국적인 음악 무대에서는 아이리쉬 악기들이나 국악 피리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요. ‘복면가왕’에서도 김연우 씨가 창을 할 때 제가 피리를 연주했죠. 박정현 ‘꿈에’. 조수미 ‘나 가거든’, 린 ‘시간을 거슬러’ 등 국악적 요소가 담긴 음악들은 거의 제가 국악 피리로 연주하고 있어요. 나얼의 ‘바람기억’도 마찬가지고요.”
권병호는 최근 본인의 정규앨범 ‘풋스텝(Footsteps)’과 리메이크 미니앨범 ‘청춘 티켓 여섯장’을 연속으로 발매했다. 그는 첫 번째 음반 ‘풋스텝’이 음악적인 깊이를 표현하는데 주력했다면 ‘청춘티켓 여섯장’에는 더욱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느낌을 담았다.
“‘풋스텝’에는 ‘고향집’이라는 곡이 있는데 추석과 정말 잘 어울려요. 유튜브에 팬이 만든 뮤직비디오도 있는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를 이용해 잘 만드신 것 같아요. ‘청춘티켓’ 시리즈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예전에 회사 분들과 노래방에 가서 이문세의 ‘옛사랑’을 하모니카로 연주했었는데 한 분이 ‘왜 음반에 이런 걸 담지 못하느냐’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가요 음반을 만들어보려던 차에 프로듀서가 앨범을 내라고 해서 갑자기 발매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다 아는 노래라도 악기 소리 하나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청춘티켓 여섯장’에는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포함해 故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건모의 ‘미련’,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 패닉의 ‘달팽이’, 바비킴의 ‘고래의 꿈’까지 총 여섯 곡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곡이 권병호의 연주만으로 이뤄졌지만 ‘춘천 가는 기차’는 김현철이 직접 녹음에 참여하며, 유일한 노래 트랙이 됐다. 이쯤 되면 ‘춘천 가는 기차’가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정작 권병호가 정한 타이틀곡은 ‘고래의 꿈’이다.
“저는 연주자라서 ‘고래의 꿈’이 가장 좋았어요. 물론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곡은 ‘춘천 가는 기차’겠지만 ‘고래의 꿈’은 제가 정말 만족했던 노래라서 이 곡 만큼은 사람들이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곡이 너무 신났고, 바비킴 씨도 듣고 덩실 춤추셨죠.”
어려서부터 악기를 배운 권병호는 대학생 때 실용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피리 아저씨’가 된 이유는 뭘까.
“전공은 제 길이 아닌 것 같았어요. 남들이 다 쫓아가는 길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한 골동품 가게에 있던 피리를 보고 이쪽 악기 인생으로 넘어오게 됐죠. 그때는 학생이라 돈도 없어서 악기를 빌려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계속 골동품 가게를 찾아다니고 낙원상가를 뒤지면서 신기한 악기는 다 샀어요. 그때가 막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한 때라서 웹서핑으로 살 수 있었던 악기는 다 사고, 여행가서도 사오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악기만 모으고 연주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악기 수집가지만, 권병호는 악기 연주자였다. 지금처럼 유튜브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그 시기, 권병호는 오로지 독학으로 악기를 악착 같이 정복했다.
“모든 악기를 혼자서 배웠어요.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그냥 음악만 듣고, 책을 보면서 독학했죠. 저는 꼼꼼히 집중해서 잘 듣는 편이거든요. 음악이라는 건 성대모사와 같아요. 카피를 잘 하는 게 음악을 잘 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개그맨 정성호 씨는 누군가를 따라 하기로 결심하면 그 사람처럼 얼굴이 보일 때까지 약 6개월이 걸린다고 해요. 그 분이 어떤 동작을 하든 말을 하든 완전히 복사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뮤지션들도 그런 복사가 돼야 좋은 음악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무대에서 셀 수 없이 악기를 연주해봤던 권병호지만 그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적 있었다.
“과거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페스티벌에 윤종신 씨가 헤드라이너로 마지막 무대에 섰어요. 앙코르 곡이 ‘오래전 그날’이었는데 그 곡이 간주와 후주가 똑같아서 연주할 때 주의해야 하는데 멍 때리고 있다가 간주에 후주를 불고 노래를 끝내버렸어요. 아무 생각 없이 저는 무대에서 내려와서야 제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죠. 윤종신 씨는 별말 안하셨어요. 아주 친해지기 전까지는 그런 실수에 대해 절대 지적을 안 한다고 해요.”
멀티 악기 연주자로는 대한민국 1인자인 권병호의 최종 목표와 꿈은 무엇일까.
“윤상 씨가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면 저는 연주자들의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아무리 탑 클래스 연주자라도 시간이 많이 흐르면 밀려나기 마련인데 저는 그렇게 잊히고 싶지 않아요. 제 나이가 여든이든 그보다 더 많든 음악을 그만두는 날까지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쭉 활동하고 싶어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