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자리 텅텅 비었습니다, 더치페이 하시면 영수증 개인별로 발급해 드립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 28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식당 중 `맛집`으로 유명한 한정식집에 저녁 예약을 문의하자 “빈자리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와 달리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별로 없었다. 평소 손님으로 가득 차는 한 삼겹살집 역시 “빈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김영란법 시행 첫 날 정부세종청사 인근 식당은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최근 부처 공무원들이 식사 시간에 가장 많이 찾는 식당가 `중앙타운`은 평소보다 크게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12시가 넘어 한창 손님으로 북적거릴 시간인데도 일부 식당은 아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비교적 저렴한 메뉴의 식당으로만 그나마 발길이 오갔다.
최근 영업 부진을 겪는 청사 인근 `세종1번가`와 `세종마치`에 입점한 식당은 더욱 상황이 심각했다. 평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베트남 쌀국수 식당도 한산한 분위기였다. 12시 반이면 손님으로 가득 찼던 커피숍들도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반면 청사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북적였다. 외부로 나가지 않고 3500원에 식사를 해결하려는 공무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청사 2동에 위치한 구내식당 관계자는 “어제부터 점심시간에 손님이 평소보다 많더라”고 말했다.
부처 공무원들은 일제히 “일단 조심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각 부처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관련 교육을 하고, 국민권익위원회가 배포한 매뉴얼을 공유했지만 “결국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공통 지적이다.
정부 부처 한 국장은 “권익위가 내린 유권 해석을 봤지만 법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더라”며 “일단은 꼬투리가 잡히지 않을 행동 자체를 삼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10월은 저녁 약속을 아예 만들지 않고 있다”며 “다들 눈치를 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각 부처 대변인실도 김영란법 시행으로 업무 추진이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언론사와 소통하기 위해 마련했던 공식 행사마저도 꺼리는 분위기다. 김영란법 때문에 소통을 아예 단절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는 식사 없는 기자 간담회를 늘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혼란을 최소화 하고, 소상공인 피해를 줄이려면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누군가 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아 공식적으로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는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공무원은 “김영란법 시행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초기 혼란을 줄이기 위한 대비는 부족한 것 같다”며 “서로 믿지 못하고 감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