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은 최근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인 영국 암홀딩스(ARM Holdings)를 약 240억 파운드(36조원)에 매수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런던에서 열린 암홀딩스 주주총회는 소프트뱅크 산하로 들어가는 매각을 정식으로 승인했다. 이번 주총에서는 사전투표를 포함, 94.92%가 매각에 찬성했다.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손정의 회장이 직접 발표한 `신 30년 비전(Next 30-Year Vision)`을 보면, 소프트뱅크의 전격 암홀딩스 인수는 이미 치밀하게 짜여진 예견된 수순임을 알 수 있다. 이 비전은 소프트뱅크가 다가올 30년 동안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선언한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ARM은 소비 전력을 극도로 낮춘 반도체 회로설계에 특화된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삼성전자와 퀄컴 등 다수의 세계 굴지 반도체 메이커를 상대로 칩 설계도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90%에 ARM 칩이 탑재되고 있고, 자동차 내 통신기기 등으로 적용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손정의는 ARM 인수를 IoT시대의 근간을 장악하기 위한,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을 내다본 승부수로 지목한다.
손정의는 인터넷에 모든 것이 연결되면 두뇌가 되는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2030년에는 ARM 칩이 매년 1조개씩 공급될 것이라고 담대한 전망을 한다. ARM 탄생과정을 보면 그의 이러한 장담은 정곡을 찌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오늘의 ARM을 있게 한 역사를 들추어 보자.
1990년에 창업된 ARM은 반도체 업계의 구조변화라는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현재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중 하나인 TSMC(台灣積體電路製造公司)가 당시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리면서 반도체 제조사 사업모델이 전환기를 맞는다. 그 때까지는 미국 인텔을 중심으로 회로설계에서 생산까지를 일원적으로 아우르는 `수직 통합형 모델`이 주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 급부상은 거액의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공장을 외부에 위탁하는 `수평 분업형`으로 업계 생태계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반도체 제조의 최상단에 위치하는 회로설계 특화 기업이 한층 두각을 보였다.
바로 이러한 생태계 전환을 주도한 도약형 기업(Exponential Organization)이 ARM이다. ARM은 이 분야 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증대시켰다. 핀란드의 노키아와 연계해 통신용 반도체를 공동 개발한 시기에 퀄컴이 ARM 칩을 자사 CPU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웨어러블 △가전 △디지털 카메라 △게임기 △의료기기 △산업기기 등 관련 시장 확대로 완성품 메이커가 ARM 소프트웨어에 한층 의존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기준 ARM은 반도체 148억개를 출하해 독자적 에코 시스템을 견고하게 구축했다.
손정의는 이러한 ARM 미래진로와 소프트뱅크의 비전을 정교하게 연계했다. IoT와 AI가 수레의 두 축이 되는 제4차산업혁명의 정중앙에 ARM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삼라만상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AI로 정교하게 제어되는 신 산업혁명의 생태계가 성숙될수록 ARM의 전략적 위용은 더욱 광채를 발휘한다.
때마침 신풍(神風)도 불었다. 영국이 EU탈퇴를 선언하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뜻밖의 호기가 찾아 들었다. 손정의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지중해에서 가족과 요트로 휴가중인 쳄버스 암홀딩스 회장을 만나 “향후 5년 이내에 종업수를 2배로 늘리고, 브랜드와 임원진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담판을 한다. `손정의 제곱 법칙`인 △하늘이 준 때 △땅의 이치 △우수한 장수 △승리하는 시스템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제4차 산업혁명의 선봉기업으로 굴기하는 `신의 한 수`를 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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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규 IP노믹스 전문연구위원 hawongy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