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차 보급 목표량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식 충전기 대신 비상·보조용 충전기 보급에 너무 치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 규정을 회피할 수 있는 편의성이나 구축 절차 간소화 같은 장점은 있지만, 정식 충전기 시장 형성이나 사용자 인식에선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3일 전기차업계에 따르면 최근 환경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이동형 충전기 보급 확산 공문을 내려 보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고정형 충전기 설치를 위한 입주자회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전기차 구매를 포기하는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결국 전체 보급이 저조하자 이동형 충전기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언뜻 보면 지혜로운 대처 같지만 사실 보급대수를 늘리려는 조급함이 담겨 있다. 일반 고정형 완속충전기 보급·구축에 지긋이 힘을 써야 하지만 당장 성과내기에 이동형 충전기 보급이 더 끌렸던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충전기 성능면에서도 고려할 점이 있다. 정식 완속충전기는 전기차 충전성능에 최적화된 7㎾h 전기를 충전하는 반면, 이동형 충전기는 2.5~2.7㎾h를 지원하기 때문에 일반 충전기 보다 서너 배 더 많은 충전시간이 걸린다. 지금 당장은 인허가, 설치가 편한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충전시간 등 더 심각한 민원이 나올 수 있는 맹점을 안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동형 충전기가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는데, 완속충전기보다 보급이 쉽다는 이유로 정부가 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내년부터 배터리 용량을 늘린 신형 전기차가 출시되는 것도 잠재적 우려를 더한다. 최근 출시한 전기차(배터리 용량 28㎾h)를 완충전하려면 정식 완속충전기로는 4시간이 소요되지만, 이동형 충전기는 10시간 넘게 걸린다. 내년부터 배터리 용량 30㎾h 이상되는 GM `Bolt`·BMW `i3` 등 신차가 나오면 충전시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전기차 구매 예정자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A씨는 “최근 전기차 민간 보급 신청에 앞서 아파트 관리소를 찾았는데 관리소장이 이동형 충전기 외에 다른 충전기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통보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전기차업계 관계자는 “이동형 충전기를 이미 쓰고 있는 아파트에 다른 전기차 구매자가 완속충전기를 도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정부가 이동형 충전기와 완속 충전기 각각의 용도와 성능을 정확히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