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73> `열정 승부사`로 불리는 최유섭 텔콤 회장

최유섭 텔콤 회장을 지난달 26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텔콤빌딩 4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최 회장은 `열정 승부사`로 불린다. 어떤 일이건 열정을 다해 그런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경영관도 남다르다. 늘 변화를 추구한다. 남과 같이 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논리다. 회사 업무는 이메일로 처리하고, 모든 업무 내용과 자금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한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73> `열정 승부사`로 불리는 최유섭 텔콤 회장

최 회장은 공부하는 최고경영자(CEO)다. 대학 졸업 후 주경야독으로 석사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급변하는 정보화 사회에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최 회장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위기는 없다”면서 “CEO는 직원들이 자율과 책임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 철학은.

▲남과 같이 해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이 남과 달라야 한다`는 게 경영철학이다. 위대한 기업은 기존 기업과 일하는 방식이나 직원들의 자세가 다르다. 나는 직원들에게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다. 회사 업무는 이메일로 주고받는다. 해당 부서장이나 직원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 일에 내 의견만 제시한다. 내가 잘 아는 분야인 경우 추가 조언을 해 준다. CEO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업무에 시시콜콜 관여하면 새롭게 변할 수 없다. 1991년부터 각종 전자통신 부품을 수입 판매했다. 지금은 자회사가 3개다. 초창기에 3명이 시작해 지금은 60여명이 일한다. 회사에 비밀은 없다. 모든 업무 내용과 자금 입출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내가 사용한 돈도 영수증을 모두 제출한다.

-학구열이 대단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내 일을 잘하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사업을 잘하려면 그 분야를 잘 알아야 한다. 산업 동향이나 기술 흐름을 내가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지시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도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했다. 그런데 사업하면서 공부한다는 게 무척 힘들었다. 박사 학위 취득에 6년이 걸렸다. 논문 작성이 가장 힘들었다. 포기할까 했는데 지도교수가 용기를 줘서 논문을 제출했다.

-제조업에는 왜 진출했나.

▲부품을 수입하다 보니 국내에서 일부 변형 부품을 요구하는 일이 있다. 이를 해외 부품 공급업체에 의뢰하면 소량인 관계로 가격이 엄청 비싸다. 각종 제품을 수입해 사후관리를 하다 보니 일부지만 부품을 국산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맞춤 주문이다. 지난날 부품을 제조하던 업체를 인수, 2012년부터 제조업을 시작했다. 기술 축적을 위해 연구소도 설립했다. 나는 제조업에 관여하지 않는다. CEO는 다른 사람이다. 고인 물을 정화하는 에코 팬을 만든다.

-제조업의 경쟁력 확보 방안은.

▲제조업은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다. 일본은 제조업이 탄탄하다. 우리도 일본처럼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 제조업이 살면 기술 축적도 하고, 요즘 심각한 취업난도 해결할 수 있다. 제조업계의 이직이 심하면 노사 간에 불신이 쌓이고, 투자를 못한다. 차별화한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집중 공략하면 제조업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해서 그 분야 최고가 돼야 한다.

-유통업에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고객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유통업 26년째다. 처음 영업을 할 때는 부품 샘플을 가방에 넣어서 들고 다녔다. 나는 어떤 일이건 건성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영업이 다 그렇지만 고객을 가장 두려워한다. 영업은 부품만 파는 게 아니라 인격을 함께 파는 것이다. 고객 만족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그런 세월이 쌓이면 고객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상대한테 신용을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신용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나.

▲정직과 진정성이다. 어떤 경우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서로가 윈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자세로 일하면 고객도 나를 믿는다. 오랜 전 일이다. 그때는 버스를 타고 걸어 다녔다.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종점에 있는 모 제조업체를 가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다 맞고 갔더니 그 회사 구매과장이 깜짝 놀라면서 “날씨가 이런데 오지 말고 전화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다. 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왔다”고 하자 감동했는지 그날 처음으로 나한테 따끈한 차(茶)를 사 줬다. 나는 경쟁사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 제품이 비싸면 그만큼 고객에게 다르게 서비스해 준다. 고객들과의 신뢰 관계 구축에 10년이 걸렸다. 세상일은 길게 보고 정직하게 일해야 한다. 단기간에 이익을 보려고 상대를 속이는 일을 하면 안 된다. 진정성을 보일 때 상대도 나를 진심으로 대한다.

-해외 거래처는 얼마나 되나.

▲미국, 일본, 프랑스, 대만, 중국에서 전기통신 부품을 수입해 공급한다. 독일과도 거래하기 위해 11월에 독일에 갈 계획이다. 흔히 중국산을 싸고 질이 나쁜 것으로 아는데 그건 오해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산은 품질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 기술이 날로 발전해 그렇지 않다. 우리가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부품은 방위산업을 하다가 상용화했다. 일본 부품은 경박단소(輕薄短小)가 특징이다. 독일은 원천 기술이 많다. 프랑스는 양보다 질로 승부한다. 국가마다 다 특징이 있다.

-직원 채용 때 뭘 중요하게 보나.

▲열정이다. 면접 때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 본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 시키지 않아도 열정을 갖는다. 일단 채용하면 3개월은 인턴 기간이다. 이 기간에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를 놓고 당사자와 회사가 함께 생각한다. 그게 당사자를 위해 바람직하다. 가장 중요한 게 사람 됨됨이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조급해 한다. 월급을 조금 더 주면 금세 이직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뭘 강조하나.

▲예의를 강조한다. 회사 캐치프레이즈가 `기본을 지키는 프로가 되자`다. 우선 예의가 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다음에 그 분야 최고가 돼야 한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고 날마다 혁신해 보라고 강조한다. 간혹 직원 가운데 “회사 비전이 궁금합니다”라고 묻는데 그럴 때 “회사 비전을 당신이 제시하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뭐가 되고 싶은지를 말하라”고 대답한다. 직원이 어떤 제안을 하면 내 의견을 보태 시행토록 한다. 회사 로고도 직원 공모를 통해 결정했다. 처음에 내가 만들었는데 촌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퇴사한 직원은 별 문제가 없다면 재입사 기회를 준다. 다만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다. 직원들이 좋다고 하면 채용하고, 문제가 있다고 하면 재입사는 불가능하다. 회사는 CEO 혼자 경영하는 게 아니다.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가.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정신이다. 일을 적당히 하면 안 된다. CEO는 도전 정신으로 회사 미래를 일궈 나가야 한다. 나는 늘 `내가 이 회사 직원이라면 나 같은 CEO와 함께 일하고 싶을까?`라고 자문한다. CEO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 평등한 입장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나부터 변화와 혁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드나.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위기 뒤에 기회가 있다.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사전에 위기 조짐이 나타난다. 문제는 어떤 준비를 하느냐다. 준비하는 자에게 위기는 없다. 위기는 직원들과 공유해야 극복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는 세상이다. 나는 한 품목만 취급하지 않는다. 다양한 품목을 유통한다. 흔히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위험 분산이다. 나도 그렇게 한다. 삼류 기업은 위기에 사라지고, 이류 기업은 위기를 극복하고, 일류 기업은 위기로 인해 발전한다고 한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성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성공하는 사람은 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게으른 습관은 게으른 사람을 만든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처음에는 힘들고 나쁘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난을 대변하는 이른바 `헬 조선`이니 `흙수저` 등의 말을 하는데 남 탓만 해서 뭘 하는가. 세상에 안정된 직업은 없다. 회사에 들어갔는데 적성에 맞지 않다면 진로를 고민하길 바란다. 자신을 최고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남들보다 열정을 갖고 더 노력해야 한다.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

-좌우명과 취미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매일 할 일 생각에 가슴이 뛰게 하자`다. 취미는 암벽 등반과 빙벽 타기다. 요즘은 골프다.

유 회장은 중앙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와 일본 와세다대, 중국 칭화대, 미국 보스턴대 등에서 CEO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 졸업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30대 후반에 사직하고 1991년 3월 전자부품을 수입하는 텔콤인터내쇼날을 설립했다. 2009년에 텔콤아이씨피, 2012년에 기온하이테크를 설립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중국 등에 20여개 대리점을 두고 있다. 통상산업부 장관과 국세청장 표창, 2013년 무역의 날 수출탑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회갑을 맞아 2014년 펴낸 `스파크 열정`과 공저 `IT사업의 10계명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가 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