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양자 암호와 양자 컴퓨팅에 관심과 기대가 급증했다. 양자 암호가 주목받는 것은 현재 암호 체계와 다른 안전성 추구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 암호 기술은 `계산 안전성`에 근거한다. 즉 암호 해독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됨을 안전성 근거로 활용한다.
대체로 통신에서는 `RSA 공개키 암호`가 널리 쓰인다. RSA 공개키 암호의 안전성은 두 소수(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뉘어서 떨어지는 양의 정수)를 곱하는 것은 쉽지만 이 곱으로부터 두 소수를 찾아내는 일(소인수분해)은 무척 어렵다는 원리를 이용한다. 하지만 현재 슈퍼컴퓨터와 차원이 다른 고성능 컴퓨터가 존재하면 결국 풀린다.
만일 연산 능력이 슈퍼컴퓨터보다 100만배 이상 빠른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두 소수의 곱인 합성수를 소인수분해하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키게 된다. 단순히 계산 시간 단축이 문제가 아니라 이로 인해 현대 암호는 대부분의 기능을 상실한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RSA 공개키 암호 기반 공인인증서와 전자서명 기술이 의미를 잃게 된다. 이는 국가 안전망과 직결되는 문제다.
양자 키 분배로 시작하는 양자 암호 기술은 `양자 역학`에 근거한 안전성을 갖춘 암호 기술이다. 빠른 계산이 가능하면 해독되는 현대 암호와 달리 양자물리학이 틀리지 않다면 `무조건적 안전성`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양자 키 분배를 이용한 암호통신은 도청이 원천으로 불가능해 선진국에서 앞다퉈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자암호 통신 기술은 미국이 수출 제한 기술로 선정, 이전도 어렵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오래전부터 양자통신망을 구축해 시험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말까지 베이징과 상하이를 연결하는 2000㎞ 양자통신 백본망을 완성할 예정이다. 무선 양자통신 분야에서 중국은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양자통신위성을 발사했다. 이미 대기 중에서 100㎞ 거리 무선양자통신 실험에 성공했다. 이제는 지상과 양자통신위성을 오가는 다양한 형태의 양자통신을 실험하면서 글로벌 양자통신이 가능한지 타진해 보는 셈이다. 일본도 국립정보통신기술연구소(NICT) 주도로 2020년까지 유선 양자통신 기술을 상용화하고, 2040년까지 위성을 이용한 무선 양자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양자 컴퓨팅 시대에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암호 기술을 개발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포스트 퀀텀 또는 퀀텀 시큐어 암호 연구는 양자컴퓨터로도 공격받지 않는 암호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다. 격자(lattice) 기반 암호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양자 암호, 양자 컴퓨팅, 포스트 퀀텀 등 `양자`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모습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예고한다. 선진국들의 성과는 결코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물리학과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확고한 기초과학 기반 위에 실용화를 위한 공학 기술이 장기간 융합해 빛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인공지능(AI) 분야에 큰 파장을 불러온 `알파고`를 아직 잊을 수 없다. 알파고의 성공은 지난 수십년 동안 AI 분야의 암흑기를 묵묵히 견디면서 꾸준히 연구한 결과다. 미래 양자통신 기술이 실용화되고 각광을 받을 시점에 우리나라가 주도 역할을 하려면 이제부터라도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 2월 SK텔레콤 컨소시엄이 국내 최초로 107㎞ 거리 양자암호통신 시험망을 구축했다. 이론상의 연구만 활발히 이뤄지던 국내에서 양자암호통신 시험망 구축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무선 양자통신 분야에서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요소기술과 핵심 부품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양자통신 분야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R&D) 성과를 서두르거나 과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한다. 학계는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소는 원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산업계의 실용화, 정부의 체계화한 개발 정책이 조화를 이뤄 지속 가능한 연구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양자통신 기술을 주도하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임영 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순천향대 교수) imylee@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