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사람보다 빠르다. 반대로 사람은 공보다 빠를 수 없다. 상식이다. 이 당연함을 현실에 구현해 세계를 제패한 게 스페인 축구다.
스페인식 패스 축구를 `티키타카`라 부른다. 티키타카는 현지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치면 `똑딱 똑딱`쯤 될 듯싶다.
티키타카에선 패스가 최우선이다. 굳이 공을 몰지 않는다. 만약 빠르고 정확하게 패스를 연결할 수만 있다면 단 몇 초 만에 상대편 골문 앞까지 갈 수 있다. 멀리는 요한 크루이프와 가깝게는 펩 과르디올라 FC 바르셀로나 감독과 루이스 아라고네스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이 티키타카에 혼을 담았다.
일본 한 방송사는 티키타카 비밀을 풀기 위해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라는 슈퍼스타를 집중 분석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동영상 공유사이트에서 한글 번역본을 만날 수 있다.
FC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티키타카로 세계 축구 흐름을 바꾼 두 선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놀라웠다.
방송에 따르면 스페인과 나이지리아 A매치(국가대표 경기)에서 스페인은 806개 패스를 주고받았으며 성공률은 93%에 달했다. 그리고 패스 3개 중 한 개가 사비를 거쳤다.
사비는 경기 중 끊임없이 고개를 좌우로 돌렸는데, 그 횟수가 무려 한 게임에 850회나 됐다. 사비에게 특수카메라를 부착한 결과 그는 자신에게 공이 오기 전에 한 번, 오는 순간 한 번 더 좌우를 둘러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다른 프로선수는 시선의 80% 이상이 공에만 집중됐다.
사비는 공이 자신에게 온 순간 경기장에 있는 선수 20명 가운데 16명 위치를 정확히 기억했다. 실험에 참가한 프로선수는 6명에 그쳤다. 공간인지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두뇌 차이도 드러났다. 경기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일반 선수는 전두엽이 활성화된 반면 사비는 대뇌핵이 활성화됐다. 일반 선수가 그 순간 패스할 곳을 찾는 반면, 사비는 방대한 과거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직관에 의지해 이미 판단을 끝냈다는 의미다. 바둑 고수의 뇌 움직임과 비슷하다.
이니에스타는 사비의 뛰어난 시야를 보완해주는 선수다. 특히 창조적 플레이로 사비 패스를 골로 연결시키는 데 능했다.
스웨덴 노벨상 심사 연구소에서 행한 뇌기능 조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5개의 선을 잇는 패턴을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 실험했다. 1분 동안 이니에스타는 49개를 만들어냈다. 스웨덴 프로축구 선수 50명은 평균 39개를 만들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니에스타의 능력이 전 세계 1% 안에 든다고 했다.
키 170㎝, 몸무게 68㎏에 불과한 사비. 이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이니에스타. 그들은 강인한 육체를 강조하던 시대에 두뇌를 사용한 창조 플레이로 세계를 호령했다. 사비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에서는 육체보다 두뇌가 중요합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