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고양이가 너무 많아요. 실리콘밸리는 `정글`입니다. 살찐 고양이는 여기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새끼 호랑이`입니다.”
얼마 전 미국 실리콘밸리 출장에서 만난 이헌수 KIC 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정부 지원이나 외부 투자를 받아 `헝그리 정신`이 없는 스타트업이 간 보기식으로 실리콘밸리에 온다고 귀띔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에 생겼다. 정부 투자도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가 이들을 과도하게 지원하다 보니 `밥캣`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IBM에서 30년 동안 연구개발(R&D) 수석 연구원으로 몸 담은 김문주 박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털(VC)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온 어떤 스타트업은 `망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하더라. 정부가 지원을 과도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박사는 “실리콘밸리에 온 중국 청년들은 투자를 받기 위해 이곳에 와서 `거지`처럼 살면서도 불평하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한국 청년들은 `(정부에서 제공한) 호텔이 안 좋다`는 말을 한다. 그런 곳들은 다 망해서 간다”고 덧붙였다.
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기자에게 “스타트업의 80%는 어떤 형식으로든 정부 공적 자금이 들어가 있다”면서 “정부가 자금 지원을 줄이면 스타트업 수도 줄고 늘리면 함께 늘어나는 구조”라고 고백했다.
창업을 장려하는 것은 세계 현상이다. 선진국들도 청년 창업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돈만 쏟아붓는다고 해결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도전 정신, 혁신을 두려워하는 2030세대 청년 문화가 우리를 지배하는 이상 정부의 재정 투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창업을 부추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지금 창업 열풍 뒤에는 정부 재정을 받은 `살찐 고양이`가 수두룩하게 숨어 있다.
돈보다 꿈과 비전을 심어 줘야 한다. 문화를 바꿔야 한다. 청년이 `돈을 어떻게 벌까` `정부 지원을 어떻게 받을까`가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할 때 산업은 활력을 찾을 수 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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