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가려진 시간’] ‘믿음’에 관한 ‘황홀한 판타지’

출처 : '가려진 시간' 포스터
출처 : '가려진 시간'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사라진 아이들,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 존재하는 대상도 믿지 않는 어른들과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도 믿는 어린아이들. 엄태화 감독은 이런 신비로운 화소들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그의 뛰어난 상상력과 섬세함이 제대로 조각된 초현실주의 ‘동화’다.

영화 ‘가려진 시간’의 수린(신은수 분)은 엄마를 잃은 후 새아버지와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온다. 수린이는 공상에 빠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성민(이효제 분)이라는 소년과 마음을 터놓게 된다. 둘은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그들만의 문자를 만들어 교환노트를 쓰며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수린과 성민이 첫사랑의 풋풋한 감정을 키워나가던 어느 날, 두 사람은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터널이 폭파되는 현장을 구경하러 산에 오른다. 우연히 빛이 나는 돌을 발견한 이후, 성민을 포함해 친구들은 사라지고 수린만 혼자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한 어른(강동원 분)이 나타나 자신을 성민이라 주장한다.

수린이는 성민이를 믿어주지만, 사람들은 성민과 수린이를 믿어 주지 않는다. 며칠 만에 어른이 된 성민, 그리고 평소 이상한 아이로 낙인 찍혔던 수린의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출처 : '가려진 시간' 스틸
출처 : '가려진 시간' 스틸

영화의 주인공, 성민과 수린은 두 사람이지만 정체성은 같다. 영화는 두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외로움’을 부여한다. 가족을 잃고 외롭게 자란 두 아이가 만나 외로움을 달래지만, 그중 한 아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갇힘으로써 다시 한 번 외부와 차단당한다. 겨우 한계를 뛰어넘고 세상 속에 나오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들을 믿어주지 않는다. 감독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믿음’을 제시한다. 수린과 성민은 의심하는 세상 속에서 또 한 번 서로의 도피처가 되어준다.

감독은 믿음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친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수린과 성민의 아지트이자 먼지와 담쟁이 넝쿨이 가득한 숲속 폐가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고, 나무뿌리 아래에 위치한 깊은 동굴은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처럼 다른 차원의 세계로 데려다 줄 것 같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후 성민이 겪었다는 ‘시간이 멈춘 세상’이 등장하는데, 그곳은 파도와 바람마저 멈춰 있는 곳이다. 이런 독특한 이미지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신비스러운 동화인 줄만 알았던 이 이야기는 현실과 맞닿자 지독한 스릴러로 변해버린다. 모든 것이 가능할 줄 알았던,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공간과 그에 걸맞지 않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교차되는 이중성은 영화에 감성 판타지뿐만 아니라 스릴러적인 요소까지 부여한다.

강동원과 신은수의 외모와 분위기는 판타지적인 설정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강동원은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함께 주는 인물로 분했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한 눈동자와 입매를 가진 신은수는 그 누군가의 첫사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순수함과 아련함을 모두 지녔다. 오는 16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