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 1호는 인류가 만든 물체 중 최초로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을 비행하고 있는 우주선이다. 현재 지구로부터 약 200억㎞ 떨어진 거리를 비행하고 있으며 매일 160만㎞씩 멀어지고 있다. 보이저 1호가 보내는 정보는 빛의 속도로 와도 지구까지 17시간이나 걸린다.
지난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약 61억㎞ 떨어진 우주 공간을 지날 때 한 장의 사진을 촬영해 전송했다. 태양빛이 반사돼 생긴 사진 속 주황색 줄 가운데에는 희미한 푸른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불과 0.12화소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점이 바로 지구 모습이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그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아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말은 우주 속 지구를 가리키는 관용어가 됐다.
인류가 외계에서 또 다른 `푸른 점` 후보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1995년이다. 스위스 제네바천문대 소속 천체물리학자가 지구로부터 42광년 떨어진 페가수스자리 51번 별 주위를 도는 행성을 찾아냈다. 이 발견으로 외계에도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이 있다는 사실이 최초로 증명됐다.
그 후 `행성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케플러우주망원경이 발사되면서 외계에도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은하만 해도 태양과 비슷한 항성의 약 22%가 골디락스 구역에 지구 크기 행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은하에 태양형 항성이 200억~400억개 있다고 칠 때 지구형 행성이 44억~88억개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골디락스 구역이란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생명체 거주 가능 구역을 뜻한다.
현재까지 케플러우주망원경이 밝혀낸 골디락스 구역의 지구형 행성은 약 20여 개에 이른다. 그중 1400광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케플러 452-b`는 온도나 환경이 지구와 매우 비슷해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외계 행성으로 꼽힌다.
그런데 최근 이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지구를 닮은 행성이 발견됐다. 태양의 바로 이웃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 주위를 돌고 있는 `프록시마 b`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알파 센타우리의 쌍성 A, B와 함께 3중쌍성을 이루는 별로서 태양으로부터 4.24광년(약 40조1104㎞) 떨어져 태양과 가장 가깝다. 여기서 프록시마는 `가장 가까운`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지난 8월 영국 런던 퀸메리대학의 길렘 앙글라다-에스쿠데 교수팀이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프록시마 b는 프록시마 센타우리로부터 약 750만㎞ 거리에서 11.2일에 한 번씩 공전한다. 지구와 태양 간 거리가 약 1억5000만㎞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가깝다. 수성과 태양 간 거리와 비교해도 1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럼에도 프록시마 b 표면에는 액체 상태 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모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적색왜성이기 때문이다. 적색왜성은 표면온도가 5000K보다 낮고 크기가 작은 별을 말한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태양보다 훨씬 온도가 낮을 뿐더러 빛도 1000배가량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처럼 암석형 행성인 프록시마 b는 항성에 바짝 붙어 있음에도 생명체 생존에 필수인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한다. 대기 역시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이 행성에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난달 초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프록시마 b에 액체 상태 바다가 200㎞ 깊이로 존재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행성의 반지름은 지구의 0.94~1.4배 크기로서 거의 비슷하며 가스로 찬 얇은 대기가 있어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항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만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의 밝기는 항성의 10억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넓은 우주에서 행성을 찾기란 컴컴한 방에서 장님이 검은 고양이를 찾는 행위에 비유되곤 한다. 이때까지 제2의 지구를 찾기 위해 더 멀리 보지 못하는 망원경의 성능을 탓해왔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프록시마 b를 찾았으니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그렇지만 가깝다고는 해도 프록시마 b는 지금의 인류에게는 너무 먼 곳에 있다. 보이저 1호의 플루토늄 동력원이 고갈되는 시점인 2020년까지 항해할 수 있는 거리는 지구에서 230억㎞ 떨어진 지점이다. 동력이 고갈된 후 지금의 속도로 계속 날아간다 해도 프록시마 b에 닿기까지는 7만년 이상이 소요된다. 보이저 1호보다 훨씬 발전된 현존 기술로도 8000~3만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에 이 엄청난 거리를 대폭 단축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지난 4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러시아의 부호 유리 밀너가 발표한 초소형 우주선이 바로 그것이다. 스마트폰만한 크기에 빛의 압력을 이용해 날아가는 얇은 돛이 달린 이 초소형 우주선을 이용하면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20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호킹과 밀너는 약 1000개의 초소형 우주선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먼저 쏘아 올린 다음 지구에서 레이저를 쏘면 초소형 우주선을 광속의 5분의 1 수준으로 비행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준비 기간 20년에다 프록시마까지 비행하는 데 20년,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신호가 지구에 도착하는 시간 4년여를 더해 앞으로 약 45년 후에는 프록시마 b의 생생한 모습을 인류가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록시마 센타우리와 3중쌍성을 이루는 알파 센타우리 A, B만을 집중적으로 관측하는 프로젝트도 최근에 출범했다. `프로젝트 블루`로 명명된 이 계획은 직경 50㎝ 크기 렌즈를 부착한 우주망원경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려 알파 센타우리 A, B를 공전하는 외계 행성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까지 망원경 제작과 로켓 등의 준비를 모두 마친 후 2020~2022년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그때쯤이면 인류는 태양과 바로 이웃한 항성계에서 촬영된 또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