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홍보를 할 때 숨기고 가야하는지 오픈을 해야 할 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목을 ‘멈춰진’이란 말보다는 은유적으로 ‘가려진’이라고 했다.” 최근 엄태화 감독이 영화 ‘가려진 시간’을 처음으로 공개한 자리에서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으며 한 말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판타지 장르의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 정확한 정보를 대놓고 홍보할 수 없다. 여러 방면으로 홍보해야 하는 신인감독의 작품을 숨기면서 홍보해야 하는 것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상업영화에 처음 도전하는 신인감독들은 스릴러나 코미디 등 일반적인 장르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많이 들어간 만큼 많은 관객을 모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보편적인 작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모험보다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인들의 특권이자 장점은 신선함과 독특함이다. 영화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 '뷰티인사이드'의 백감독,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 등 ‘도전’적인 마인드를 가진 신인감독처럼 말이다.
‘늑대소년’은 체온46도의 의문의 존재이자 야생의 눈빛을 가진 늑대 소년과 한 소녀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뷰티 인사이드’는 매일 자고 일어나면 몸이 바뀌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의 내면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한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결과적으로 ‘늑대소년’은 66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뷰티 인사이드’는 멜로영화로는 손에 꼽힐 만한 기록인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지난해 대종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이들 작품 모두 독특한 판타지 세계관을 바탕으로 감독의 섬세함과 뛰어난 상상력을 마주할 수 있어 기존 영화들에서 보기 힘든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설정적인 독특함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선보이며 감독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고,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단숨에 떠올랐다.
이들의 뒤를 이을 판타지 영화 ‘가려진 시간’은 의문의 실종사건 후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소녀 수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믿음에 관한 작품이다.
특히 ‘가려진 시간’의 신은수가 강동원의 머리를 잘라주는 모습은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조성희 감독과 엄태화 감독 모두 거친 느낌의 독립ㆍ단편영화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후 환상적인 이야기가 담긴 상업영화로 돌아 왔다는 게 닮았다. 조성희 감독이 ‘짐승의 끝’ ‘남매의 집’ 등 다소 섬뜩한 느낌의 독립ㆍ단편영화를 연출한 이후 첫 상업영화에서 ‘늑대소년’을 내보인 것처럼, 엄태화 감독 역시 날것의 냄새가 가득한 ‘숲’ ‘잉투기’와 같은 독립ㆍ단편영화를 연출한 후 첫 상업영화로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내세운 ‘가려진 시간’을 선보인 것이다.
앞서 엄태화 감독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비현실과 현실이 충돌하거나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소재다. 표현 방법이 다르다뿐이지 ‘잉투기’도 가상현실과 꿈이 충돌한 영화였다. 이번엔 시간이 뒤틀리는 이야기를 해보았다. 멈춰진 세계가 관객분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그동안 못 봤던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신인감독으로서의 포부와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물론 혹자는 이들 영화에는 송중기, 한효주, 강동원 등 톱스타빨(?)이 있지 않았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시나리오 중에서 그들이 이 작품을 선택한 데는 그 이유가 있다. 앞서 강동원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가장 재밌었던 작품”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많은 시나리오 중에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었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배우들도 신인감독의 도전에 과감하게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배우들이 이들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관객이 신인감독의 데뷔를 기다리는 이유는 기존에 봐왔던 이야기를 또 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제 관객은 ‘믿고 보는’ 장르도 좋지만, 신선함에 목말라 있는 만큼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로 머리를 깨워줄 수 있는 작품을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인감독, 그리고 기존감독들이 더욱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발판이 먼저 생겨야 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