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선택할 때 우리는 전통 공연과 창작 공연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기도 한다. 영화와는 달리 무대 공연은 장소, 시간, 비용의 제약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고르는데 더 신중해진다.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같은 공연도 캐스팅 조합에 따라 선호도의 차이가 현격하게 난다.
창작 공연은 고유 전통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성이 시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창작 소재 창극과 오페라 위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 두 장르는 한국 전통 소재로 창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많았지만 최근 소재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 판소리와 창극, 똑같은 장르는 아니다
판소리와 창극을 같은 장르로 생각하거나 똑같은 장르는 아니지만 역사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판소리는 북 치는 고수의 도움을 받지만 창자(소리꾼) 1명이 만드는 극예술이다. 창극은 오페라 형식으로 판소리를 무대화해서 여러 명의 창자와 여러 악기가 이야기를 엮어 가는 극음악이다.
판소리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발생, 18세기 중엽에 뿌리를 내렸다. 창극은 100여년 전 우리나라 최초 서구식 극장인 원각사가 개관할 무렵에 판소리를 서구식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우리 고유 전통에서 소재 찾은 창작 작품
국립창극단의 창극 `배비장전`, 더뮤즈오페라단의 오페라 `배비장전`은 지난 8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과 해오름극장에서 겹치는 시기에 공연됐다. 양반의 허례허식을 풍자한 판소리 `배비장타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두 작품은 판소리가 창극과 오페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줬다.
판소리 `가루지기타령`의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에서 시작된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는 지난 4월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극장에서 시즌 프로그램으로 공연됐다. 고선웅 작·연출로 현대 감각이 발휘된 이 작품은 좋은 전통의 현대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무용단의 무용극 `신시`는 지난해에 공연된 `신시-태양의 축제`가 완성도를 높여서 재공연된 작품이다. 단군신화라는 전통 소재를 담고 있지만 춤의 장르는 고전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모두 아우르는 독특한 작품이다.
◇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로 눈을 돌린 소재 개발
전통에서 소재를 가져와 전통 또는 현대 기법으로 창작되는 기존 방식에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로 눈을 돌려서 소재를 찾는 창작 트렌드도 주목된다. 국립극장과 싱가포르예술축제가 공동 제작한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소재를 가져왔고, `오르페오전`은 그리스 신화이자 오페라 대표 소재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창극으로 만들었다.

서양에서만 소재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사마천의 고향인 중국 산시성 한성시와 뉴서울오페라단이 공동 제작한 오페라 `사마천`은 한국어 아리아와 대사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 성악가들이 출연했다. `사마천`은 중국 작품을 우리가 대신 제작한 것이라기보다 중국 역사 소재를 우리 시각으로 재해석해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창작 소재를 가져온 것은 과거에도 있었다. 창극 `적벽가`의 기초인 판소리 `적벽가`는 중국 고전에서 이야기 전체를 가져왔지만 우리 정서로 대화, 상황 등 디테일을 만든 우리나라 작품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하나인 `적벽가`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재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서 차용했다 하더라도 우리 정서를 담아 우리가 만든 작품은 우리나라 작품이라는 개념을 널리 공유할 필요를 느낀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진리인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진리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더 넓은 창작 스펙트럼을 가지려면 세계적인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서 다시 세계로 재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 고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우리 정서로 재해석, 재창조한 경우 그 콘텐츠는 서양 콘텐츠가 아니라 우리 콘텐츠라는 개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동서양의 지역 경계, 과거와 현재의 시간 경계에 얽매이지 말고 창작에 필요한 소재와 주제를 가져와서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제작자와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