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이제 드라마를 제작할 때 해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한류스타를 섭외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드라마 판권의 가격은 초미의 관심사다. 사전제작 환경이 활성화되며 아예 심의를 미리 신청해 한중 동시방영까지 노리고 있다.
광고수익이 거의 전부인 국내 드라마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보면 해외진출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특히 중국은 국영 채널이 25개, 전체 채널이 3000여 개에 달하기 때문에 파이가 크다. 그러다보니 주객이 전도되며 이런 저런 말썽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 작품성 어디가고, 중국 시청자 위한 그림만
한류스타 캐스팅을 믿고 있다가 발등 찍히는 경우도 있다. 한류스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해외에서 인기를 끌만한 비주얼로 드라마의 흥행을 장담하다가 낭패를 보는 것이다. 제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한류스타라고 해도, 다 떠나서 결국 중국시장에 높은 값으로 잘 팔리는 것은 한류스타의 유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드라마의 중심축이 이야기가 아니라 시각적인 요소로 흘러가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은 막상 뚜껑을 여니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그간 많은 히트작을 품어낸 박지은 작가에 흥미로운 판타지물이어서 기대가 컸지만, 작품성보다 CF 속 한 장면 같은 영상미만 강조됐다는 것이다.
자기복제, 캐릭터 표현 등 드라마가 지적받고 있는 사항은 복합적이기에 부진한 성적이 그 어떤 이유 탓이라고 딱 짚어 말하진 못한다. 하지만 전지현과 이민호는 분명히 중국시장에 통하는 한류스타들이며, 실제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대표 포털사이트 바이두에서는 드라마 제목을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만 130만 개가 넘으며, SNS 웨이보에서도 관련 검색어 노출횟수는 1만회를 돌파하고 관련 소식은 8억 개에 달한다.
SBS 측은 “‘푸른 바다의 전설’은 사전제작 드라마가 아닌 만큼 현재로서는 중국 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자연스레 중국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제작비를 220억이나 투자한 작품인 만큼 그 수익을 해외에서 만회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 중국 눈치보다 ‘한한령’에 발목 잡힌 드라마
한류확산을 위해, 높은 효과와 수익을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시장이 되어버린 중국이지만, 해외진출인 만큼 생각지 못한 난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중국의 눈치를 살피며 과도한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그렇다.
요즘 드라마들은 제작과 동시에 심의를 신청해 한국과 중국의 동시상영을 노린다. 미디어가 빠르게 순환되는 만큼 양국의 트렌드를 맞추고 폭발적인 시너지를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중국 심의는 드라마 제작의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심의를 받는 데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이 소요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로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KBS2 드라마 ‘화랑’은 지난 9월 촬영을 마쳤지만 지난 15일이 돼서야 중국 심의를 통과했다.
복잡한 심의과정은 편성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중국진출을 노리는 드라마들은 중국에서 방영 허가가 나지 않으면 제작이 늦춰지거나 국내에서 전파를 탈 시기까지 차일피일 미뤄진다.
SBS 드라마 ‘사임당’은 100% 사전제작으로 이미 촬영을 끝마쳤다. 당초 올 하반기에 방영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결국 내년 1월 편성을 확정지었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사임당’이 아직까지 중국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한류 콘텐츠 방송을 금지하라는 한한령이 불거지면서, 마음이 불안할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푸른 바다의 전설’은 사전제작 드라마가 아니기에 중국동시상영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도 내년 2월 중국 방영을 계획하고 현재 중국 측과 계약을 진행 중이다. 그러면서 SBS 측은 늦어지는 중국심의가 한한령의 영향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한한령의 강도가 높아지고 구체화되고 있는 지금, ‘푸른 바다의 전설’ 측이 생각하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푸른 바다의 전설’은 북남미, 유럽, 동남아 등에 동시방영되고 있지만 전체 매출액에 기여하는 부분은 미미하다. 중국진출에 실패한다면 ‘대박’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해외 네임벨류 믿다가 발등 찍힌다
반대로 해외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판권을 사와 현지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유명 미국 드라마 ‘안투라지’는 헐리우드 스타의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코미디다. 화려하면서도 묘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연예계를 자극적이면서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이 드라마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과연 다른 정서를 어떻게 융화시킬 수 있을지가 업계와 대중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의 한국화는 아직 무리였다. 이 드라마 역시 막상 첫 회가 방송되고 나니 혹평이 일색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난무하는 욕설과 낯부끄러운 단어들의 무분별한 사용 탓이다. 시청자들이 우리나라 정서와 미국의 개방적인 사고의 충돌하는 부분을 잘 수용할 수 있도록 연출하지 못했다. 결국 원작의 네임벨류를 믿고 있던 ‘안투라지’는 오히려 비교를 당하며 낮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