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 제한에 합의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만이다. 배럴당 40달러대를 오가던 국제유가는 합의 발표가 전해진 1일 50달러대 턱밑까지 치고 올랐다.
당분간 상승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승폭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산유국 감산 이행 여부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취임 이후 미국 에너지정책이 최대 변수로 지목됐다.
OPEC는 3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회의를 열어 하루 최대 생산량을 3250만배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10월 하루 평균생산량보다 120만배럴 줄어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라크 등 3대 산유국이 합의하면서 전 회원국이 뜻을 같이 했다. OPEC 비회원국 중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도 생산량 감축 의사를 밝혔다. 빈 살레 알사다 OPEC 의장은 러시아가 하루 평균 3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OPEC가 산유량을 줄이는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OPEC는 하루 150만배럴 감산 결정을 내렸다.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내년 1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4.21달러(9.3%) 뛴 배럴당 49.4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상승폭은 9개월만에 최대다. 마감가격은 10월 27일 이후 약 5주 만에 가장 높다. 런던 ICE선물시장 내년 1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전 거래일보다 4.09달러(9%) 오른 배럴당 50.47달러를 기록했다. 반면에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일보다 0.53달러 내린 44.12달러를 기록했다.
급등, 50달러대 박스권 등 시나리오가 나왔다. 국제유가 하락에 단초를 제공한 미국 셰일가스 생산 추이, 산유국 감산 이행 여부 등이 최대 변수다.
OPEC 감산 합의로 국제유가는 당분간 상승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상승폭은 굵직한 변수로 인해 예단이 쉽지 않다. 유가 상승으로 인해 미국 셰일가스 생산 재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최대 변수다. 화석 연료 생산량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가 주목되는 이유다. OPEC 회원국 감산 이행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정유·석유화학 등 유가 흐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산업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수혜종목으로 지목된다.
◇미국 `스윙 프로듀서` 우뚝
미국 셰일오일은 유가를 향방을 좌우하는 거대 변수다. 대다수 미국 셰일오일 시추기업 손익 분기점이 배럴당 60달러 내외다. 유가가 60달러를 넘어서면 셰일 오일 생산량이 급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당선인도 화석연료 생산량 확대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확률이 높지 않다는 의미다. OPEC 회원국 재정적자 감내 수준과 미국 셰일오일 기업 손익분기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50~60달러대 박스권을 오갈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원유 시장에서 미국 영향력은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미국 셰일오일 기업은 시추, 중단 사이클이 상대적으로 짧다. 유가에 빠르게 대응하며 총생산량을 조정하고 수급 밸런스를 맞추는 스윙 프로듀서의 역할을 사우디를 대신해 미국이 수행한다.
김효진 교보증권 연구원은 “내년 유가 향방은 새로운 스윙프로듀서인인 미국 셰일오일과 글로벌 수요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며 “ 유가 박스권이 소폭 상승하고 트럼프 취임 이후 인플레 기대심리도 유지될 것”으로 예측했다.
◇OPEC, `배신이냐 이행이냐`
OPEC 감산 이행 여부는 유가 향방을 결정지을 또 하나의 단서다. 과거 감산 합의 이후 매번 생산량을 늘렸지만 현재 OPEC 회원국 재정상황을 감안하면 이행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동안 증산에 앞장선 사우디 감산 의지가 확고하다. 사우디는 이번 회의에서 하루 48만6000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이란의 9만 배럴 감축안을 받아 들였다. 국영 기업 아람코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 감산을 통한 유가 상승이 절실하다. 내년 5월 감산 연장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을 감안하면 6개월짜리 합의안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았다. 사우디 국가 수입 90%가 원유 관련 산업에서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재정개혁 착수를 권고할 정도로 현재 사우디 외환보유 상황은 악화된 상태다.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OPEP 주요 산유국 생산량이 역사상 최대 수준에 근접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더 이상의 증산 경쟁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유·석유화학·조선 등 수혜
OPEC은 원유 생산량을 하루 3250만 배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약속을 지킨다면 원유는 바로 공급 부족으로 돌아선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내년 세계 석유 공급 초과량은 하루 50~100만배럴이다. OPEC 회원국이 감산을 이행하면 원유 생산량은 지금보다 하루 최대 120만 배럴 가량 감소한다.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유, 석유화학 산업은 직접적 수혜가 예상된다. 석유,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유가가 상승하면 재고 축적 수요까지 발생해 제품 마진도 강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오갈 때도 매년 세계 석유 수요는 70~80만BPD 가량 꼬박 늘어났다. WTI 기준 배럴당 60달러대까지 상승해도 정제 마진에 영향을 줄 정도로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 정유 수급 상황만 고려해도 내년 세계 정제 마진은 2016년보다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며 “OPEC 감산 결정으로 인해 2017년 세계 정제 마진 강세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조선 산업 시황도 개선될 전망이다. 대신증권은 최근 시추 기술 발달로 채산성이 향상되면서 해양 플랜트 신규 프로젝트 입찰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OPEC 생산량 감축 결정으로 최종투자결정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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