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은 근대 과학 발전의 근간이다. 1454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은 근대의 시작인 르네상스를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지식과 정보를 개방한 `혁명`이었다. 1665년 영국 왕립학회에서 발간한 최초의 전문 학술지 `트랜스액션`은 일부 학자들의 지식 향유물인 연구 결과물을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든 연구자가 토론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렇게 시작된 지식의 축적은 과학 발전의 주춧돌이 됐다. 이처럼 개방은 `새로운 과학`을 이끈 핵심 요소다.
오늘날에는 정보통신기술(ICT) 발달과 디지털 연구 자원의 축적으로 지식 교류가 더욱 활성화됐다. 지식 복제와 획득에 걸리는 시간 및 비용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첨단 장비 발달과 디지털 혁명은 데이터 기반의 대규모 연구 협업이 가능한 새로운 연구 시대를 열었다. 올해 초 세계를 뜨겁게 달군 중력파 검출 연구는 개방형 과학의 좋은 사례다. 20개국 70여개 연구기관의 연구자 1000여 명이 미국에 설치된 `라이고(LIGO)`라는 초대형 연구 장비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협업은 세기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이런 추세에 맞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픈 사이언스를 국제 공동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공공 자금이 투입된 연구 결과인 출판물, 데이터 등을 공개해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는 개방형 과학을 오픈 사이언스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에 대한 후속 검증과 추가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연구 방법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오픈 사이언스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과학기술계의 `공유 경제`에 빗댈 수 있다. 연구 시설과 자금이 부족한 연구자라 해도 좀 더 쉽게 연구 자원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연구개발(R&D)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오픈 사이언스는 중복 연구를 감소시켜서 국가 R&D 자금의 운영을 효율화할 수 있게 하고, 연구 데이터의 개방·활용으로 경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연구용 위성 영상을 개방, 연간 1조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구자는 다양한 연구자들과 디지털 협업이 가능하고, 개방된 데이터를 통해 실험 장비 없이도 최첨단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바로 세계인이 함께 누리는 과학이 되는 것이다.
오픈 사이언스 체제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공 연구 성과에 대한 공개 의무화 규정, 연구 데이터의 공개·공유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 또 연구 데이터는 공공 자원으로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연구자의 마인드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은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와 정책을 통해 연구 데이터의 개방 및 활용을 촉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픈 사이언스의 중요성을 인식, 국가 R&D 사업에서 산출되는 데이터를 개방·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국가 규모로 생산되는 연구 성과물 및 연구 데이터를 개방·공유·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성공 사례를 짚어 보는 등 앞으로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오픈 사이언스 포럼을 개최했다.
지형상의 특성과 천문학 규모의 비용 때문에 초대형 연구 시설을 구축할 수는 없지만 ICT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인 우리에게는 오픈 사이언스야말로 시대가 준 기회다. R&D 활동에 ICT를 융합하고, 연구 성과물과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오픈 사이언스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는 재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shhahn@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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