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美 트럼프 정부와 한국 에너지산업-화석연료로 시계 돌리는 트럼프

[이슈분석]美 트럼프 정부와 한국 에너지산업-화석연료로 시계 돌리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다가오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미국의 원유 개발과 기후변화 정책 기조가 바뀌고, 이에 따른 파장이 전 세계에 불어 닥칠 전망이다. 트럼프 캐비닛(내각)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정책 방향도 확연해졌다. 원유·천연가스 생산, 수출, 소비를 늘리고 환경 규제는 철폐하려는 노선이 뚜렷해졌다.

◇베일 벗는 1기 캐비닛…화석연료 시대로

트럼프 차기 대통령은 에너지·환경 분야 장관 후보를 `친 화석연료, 반 기후변화` 인사로 채웠다. 기후변화는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과도한 환경 규제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한 자신의 색깔을 대변한 `코드 인사`다. 버락 오바마 정부와의 선긋기를 넘어 기존 정책 백지화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에너지장관엔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를 내정했다. 신재생에너지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해 온 인물이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고 있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주자로 나섰을 당시 에너지부 등 3개 정부 부처는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내놨다. 텍사스 주지사 재직 당시엔 트럼프 핵심 공약의 하나인 키스톤 엑스엘(XL) 송유관 건설을 적극 옹호했다.

환경보호청(EPA) 청장 내정자 스콧 프루잇은 오바마 대통령이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추진해 온 화력발전소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집단 소송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근 EPA 청장으로 내정된 뒤 “불필요한 EPA 환경 규제로 수십억달러가 낭비되는 것을 보느라 피곤하다”며 자신이 수장으로 앉을 조직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취임 이후 화석연료 관련 규제가 대폭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석유·가스 개발을 감독할 내무부 장관으로는 라이언 징크 공화당 하원의원을 발탁했다. 역시 반 기후변화 인사다. 2014년 한 토론회에서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에 의해 가중된다는 증거가 없다”는 의견을 밝힌 `반 기후변화론` 대표 주자다.

이 밖에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 내정자, 벤 카슨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후보,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 후보 등 참모진 대다수가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 인과 관계를 부정하는 인물로 채워졌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후보는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시절에 기후변화, 신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의 필요성을 공개석상에서 밝히긴 했지만 트럼프의 기조와 방향을 달리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 면면을 살펴보면 화석연료 개발·수요 확대 의지가 한층 뚜렷해졌다. 화석연료 생산을 적극 늘리는 공약 이행은 물론 교통, 주택 등 생활 전반에 거쳐 화석연료 사용이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술 전문 조사업체 럭스리서치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향후 10년 동안 미국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현재보다 20%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공영방송 PBS는 “트럼프 내각 구성을 보면 미국 에너지 정책은 지금까지와는 방향성을 완전히 달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내각은 기후변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로 채워졌고, 정책에도 이런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가 변동성 커지고, 미국 입김 거세질 듯

트럼프 차기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핵심은 미국이 보유한 풍부한 석탄, 원유, 천연가스 개발을 통한 산업 경쟁력 제고다. 미국 내 화석에너지 탐사·개발 규제와 에너지 자원의 원활한 생산을 막는 규제는 모두 철폐한다는 입장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장려한 조세 혜택 등 인센티브도 역시 휴지통에 넣겠다고 공언했다.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과 190여개국이 참여한 기후변화 대응 체계인 파리협정도 폐지, 탈퇴 대상이다. 화석연료 사용량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신재생에너지 등 청정에너지 비중을 늘린다는 오바마 정부의 기조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키스톤 엑스엘(XL)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승인 등 대표 공약을 보면 원유 생산량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짙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채굴한 오일샌드를 미국 텍사스주 멕시코만 정제시설에까지 들여오기 위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오바마 대통령은 “온실가스 추가 배출이 없을 경우 사업 허가가 가능하다”며 사업 승인을 거부했지만 트럼프는 생각이 다르다. 취임 직후 프로젝트를 재추진, 완공시킨다는 계획을 수차례 밝혔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하루 83만배럴이 시장에 흘러들어간다. 올해 2분기의 글로벌 원유 공급 과잉 규모가 하루 평균 290만배럴 수준이었다. 이와 더불어 연방정부 소유 지역에서 셰일 시추를 시작하고 북극해와 대서양 연안에서도 원유 생산을 허용할 계획이다. 미국이 원유 생산, 수출에 적극 나선다면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로 상승 기조를 보인 국제유가는 다시 하방 압력을 받게 된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여전히 국제 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60달러대 안팎의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대다수 미국 셰일오일 시추 기업의 손익 분기점이 배럴당 60달러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가 60달러를 넘어서면 원유 생산량이 급증하지만 유가의 하방 압력은 거세진다는 의미다. 시추, 중단 사이클이 대체로 짧은 셰일오일 기업은 수급 밸런스를 맞추는 스윙 프로듀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원유 총생산량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석탄 산업 부활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미국 석탄소비량 93%가 발전용으로 쓰이고 있고, 대안을 찾기 어려워 수요가 단기간 빠르게 증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19일 “트럼프가 신재생에너지 수요를 석탄발전으로 돌릴 수 있지만 판도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효용 가치 소멸로 인해 미국에서 석탄 소비가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석탄 개발이 다시 활기를 띨 가능성은 옅다”고 진단했다.

◇파리협정 탈퇴 안 해도 국제 공조 흔들릴 공산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에서 또 하나 관심사는 파리협정 탈퇴 여부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기후변화는 허구”라고 주장하며 파리협정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리협정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국제 협정이다. 2021년 1월에 발효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골자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가 지켜야 하는 첫 합의다. 미국 의회는 올해 9월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법으로 파리협정을 이행하겠다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미국의 `공식` 탈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리협정 탈퇴 규정을 보면 협정 당사국은 발효 직후 3년 동안 탈퇴할 수 없다. 탈퇴 의사를 밝혀도 1년 동안 공지 기간이 필요하다.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이 4년인 것을 감안하면 트럼프 집권 기간에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협정 자체를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는 있다. 집권 4년 동안 `준비 기간`을 이유로 이행을 미룰 수 있다. 협정이 발효된다 하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투자, 규제 등을 모두 백지화함으로써 무시할 수도 있다. 에너지부, 환경청 장관 후보자의 성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국이 파리협정 의무를 저버리면 중국, 인도 등 에너지 소비 대국을 비롯해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이행 압력도 사라진다. 2020년부터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선진국들이 내놓기로 한 1000억달러 규모의 지원금 출연 약속도 이행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짙다. 이로 인해 신재생, 전기차 등 온실가스 감축 대안으로 떠오른 에너지신산업 시장도 장기 부진을 겪을 공산이 크다. 지난 9월 39개국이 약 99억달러에 대한 공여 협정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미국은 최대인 30억달러를 공여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트럼프가 최근 기후변화에 대해 다소 누그러진 입장을 보이는 것은 변수다. 환경운동가인 엘 고어 전 부통령을 접견하고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 사이에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도널트 트럼프 에너지 관련 공약>


도널트 트럼프 에너지 관련 공약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