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조류독감과의 전쟁이다. 도살 처분된 닭과 오리가 2000만마리에 육박하고 서민 식탁을 책임졌던 계란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치솟고 있으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물원 휴장으로 아이들은 당분간 동물 친구도 만나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독감(AI)으로 도살처분 되는 닭과 오리 숫자가 3000만마리까지 예상된다는 언론 보도에 국내 축산 농가는 AI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일대 전쟁에 들어간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19일 기준 도살처분 및 매몰 예정인 가금류 숫자는 1911만수다.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까운 점은 이 같은 상황이 거의 매년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1400만마리 가금류가 도살처분되면서 역대 최악이라 평가받았던 조류독감 사고가 불과 2년 전에 일어났다. 그 이전에도 조류 수백만마리가 도살처분 되는 등 이제 조류독감은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
도대체 조류독감이 무엇이길래 전 세계가 쩔쩔매는 것일까.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생명체 유전자까지 조작하는 첨단기술 시대에 어째서 원시적 전염병에 속수무책일까. 조류독감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이 지긋지긋한 불청객에 대해 한 번 알아봐야겠다.
◇겨울철에 주로 조류독감이 유행하는 이유는 철새
조류독감은 닭과 오리처럼 식용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조류인 가금류나 야생 조류들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급성 전염병이라 하더라도 조류독감은 그 정도에 따라 `저병원성`과 `고병원성`으로 나뉜다. 저병원성은 증상이 약해 병에 걸렸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냥 지나가는 반면, 고병원성인 경우는 48시간 내에 100% 사망할 만큼 치명적이다.
다른 계절에도 간혹 발생하는 경우가 있지만 유독 겨울철에 조류독감이 많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철새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겨울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철새가 다른 지역에서 조류독감에 감염된 후 찾아오면서 전파시킨다는 것이다.
문제는 면역력이 강한 철새는 조류독감을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이 있지만, 양식장에서 자란 닭이나 오리는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가금류가 대량 사육되는 농장에서는 전염이 더 빨리 일어나면서 집단 폐사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올해 조류독감은 예년보다 훨씬 더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 방역 담당자들 의견인데, 사람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없지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조류독감 위험성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독감에 걸리지 않는 근본적인 예방 방법은 면역력 향상
가금류가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류독감에 걸리는 것을 막으려면 `예방 백신`을 접종하거나, 바이러스 `면역력`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다. 마치 사람이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거나, 체력을 길러 스스로 극복하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선 백신 접종은 우리나라가 청정국 지위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조류독감 상시 발생국`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를 도살 처분하는 이유는 바로 청정국 위치를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일단 현재 상황에서는 백신 사용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방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 말에 따르면 도살처분은 조류독감을 없애기 위한 작업이지만, 백신 접종은 조류독감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반면에 언제 또 바이러스가 발생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작업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미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조류독감 피해가 나타났다. 도살처분된 가금류 수도 사상 최대인 만큼 청정국 지위 유지보다는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백신 접종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백신 접종이 단기 예방법이라면 면역력을 기르는 것은 장기 예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금류 양식업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면역력을 기를 수 없는 이유가 움직이기조차 힘든 비좁고 열악한 사육 환경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제성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 업자 하소연이다. 경제성을 맞추기 위해 공간은 최대한 비좁게 만들고, 계란은 가급적 많이 낳아야 하는 상황에서 닭이나 오리 면역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류독감을 어떻게 예방해야 가장 효과적일지에 대해 도무지 판단이 서지를 않는다. 이쪽을 취하면 저쪽을 잃고, 저쪽을 취하면 이쪽을 잃어야 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것 하나만은 분명하다고 본다. 둘 다 얻을 수 없다면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쪽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갑자기 사람이 조류독감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염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조류독감은 사람과 가금류 모두 감염될 수 있는 인수 공통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조류독감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야생 조류 접촉을 피하고 추운 겨울철이라도 손 씻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운동을 한다면 조류독감에 걸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