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가수에게 히트곡이란 양날의 검이다. 하나의 히트곡만 있다면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라도 인지도는 단숨에 올라간다. 동시에 끊임없이 가수를 따라다니며 존재를 증명해주면서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하다.
진원이 부른 ‘고칠게’가 그렇다. ‘고칠게’는 2008년 케이블방송 Mnet ‘다섯 남자와 아기천사’의 OST다. 감성적이고 아련한 이 발라드는 노래방에서 자주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원의 ‘노래’가 알려졌을 뿐이었다. 약 10년이 흐른 뒤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Mnet ‘슈퍼스타K 2016’(이하 ‘슈스케’). 무대 위에서 ‘고칠게’를 부른 진원을 본 시청자들은 놀라워했고, 심사위원들은 실제 진원이 아니라 모창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슈스케 #톱10 #또 다른 모습
“방송사 측에서 먼저 출연 제의가 왔는데 부담스러웠어요. 경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거든요. 망신당할 것 같아 걱정했죠. 한편 저를 알리고 싶기도 했어요. ‘고칠게’ 부른 진원이 저라고요. 해이해진 마음을 잡아줄 자극제가 필요했어요.”
‘슈스케’에 이미 데뷔를 했던 사람들이 출연한 적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진원처럼 상당한 단계까지 올라간 일은 이례적이다. 진원은 여느 참가자처럼 간절한 눈빛과 진심을 어필했고, 결국 톱(TOP)10 진출까지 하게 됐다.
“제가 ‘고칠게’만 잘 하는 게 아니거든요. (웃음) 경연 안에서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맨 처음 심사 때 ‘고칠게’만 부르고 떨어질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았죠. 경연할 때마다 나오는 곡들이 제 장점을 부각시켜줄 수 있는 중저음의 곡이었어요.”
경력자인 진원이었기에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경연에 참가하기까지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묻자 진원은 바로 손 사레 치며 “자존심 안 상했다”고 말했다. ‘슈스케’를 단순히 이슈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가짐이었다.
기사와 댓글도 일일이 다 찾아본다는 진원은 “악플도 무플보다 낫다”며 자신을 향한 관심에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공백 #슬럼프 #성숙
“그동안 잘 지냈다고 하면 좋겠지만 솔직히 방황하고 자책한 시기가 길었죠. 당시의 회사와 일할 때 초반은 음원도 내고 영화도 찍고 잘 됐어요. 그런데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서 흐름이 끊기고 악순환이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다 하기 싫은 거예요. 초반의 열정이 사라져버리니 의욕도 사라졌어요. 제 몸을 혹사시키면서 목 건강에 대해서도 체념해버렸어요. 3~4년 동안은 노래를 거의 포기했으니까요.”
항상 울면서 지낼 수는 없으니 놀기도 하고 일을 하며 지내왔지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덤덤하게 말하지만 그동안의 시간은 진원에게 꺼내기 힘든 시기였다. 노래 연습에도 소홀하다보니 목소리와 창법도 달라졌다.
“조금만 목을 쓰면 금방 쉬는 등 남들보다 목의 피로도가 많이 쌓여있는 것 같아요. 예전 발성도, 노래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목을 혹사시키는 타입이었거든요. 체념한 상태에서 노래하니 더 되던 것도 안 되더라고요.”
진원은 놀 수 있으면 놀고 힘들면 힘든 대로 지내며 가만히 있었다며 철이 늦게 든 편 같다고 했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방법을 찾지 않고 앉아서 마냥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듣는 이로서는 철없어 보이기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가장 무서운 무기력함에 빠졌을까‘ 싶어 조금은 숙연해졌다. 그 무기력함을 이겨내는 것조차 성숙의 과정이기에, 마음고생을 겪은 진원이 심적으로도 많이 성장했을 것 같다고 짐작했다.
#진원 스타일 #음악 #첫 작사
“그렇게 지내다 제가 사랑하는 노래를 못 부르게 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제는 버릴 건 버리고 미련 없이 지금의 제가 잘하는 것들을 잘 살려서 진원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제 노래는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게 부각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들어도 진원이 부른 곡인데 잔버릇이 많은 거죠. 그 버릇을 고쳐나가면서 제 스타일을 밀고 나가고 싶어요.”
진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제 고음이 잘 나오지 않아 중저음 톤 노래 위주로 부를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올해 발표한 ‘노래를 불러서’는 다이내믹한 멜로디로 절절함을 표현하기보다, 듣기 편안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분위기다. ‘고백하는 말’ ‘세레나데’는 기분 좋아지는 밝은 곡이다.
최근 발매한 ‘소 뷰티풀(So Beautiful)’은 팝 특유의 편안한 매력이 부각된 발라드 곡이다. 진원은 이 곡을 “위로송”이라고 표현했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다. 처음으로 직접 작사에 참여해 진심을 더하기도 했다.
“원래는 남녀 관계를 다룬 러브송으로 하려고 했어요. 헤어짐이 다가온 상황에서 ‘아직 내 마음 속 너는 ’소 뷰티풀‘인데 왜 넌 날 원하지 않을까’하는 남자의 심경을 담은 곡이요. 그런데 가사가 너무 뻔한 것 같아서 바꿨어요.”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가사에 유독 신경을 쓰는 진원이었다. 직접적인 가사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그는 “가사를 볼 때 나부터 와 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중적인 노래는 결국 공감 가는 노래다. 여러 상황을 노래하며 대중에게 공감대가 되어드리고 싶다”고 생각을 전했다.
#예능인의 피 #제2막 #되찾은 열정
진원은 힘든 공백기를 보내왔기에 더욱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진원과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거침없이 개인기를 선보이며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기도 하고 친구처럼 장난도 치며 친근함을 자아냈다.
이에 예능에 출연할 생각은 없냐고 물으니, “당연히 나가고 싶다. 저는 원래부터 나가고 싶었는데 안 불러주신 거다. MBC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에 나가고 싶다”고 답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올해는 ‘슈스케’로 발판을 만들었으니, 내년에는 그 발판을 딛고 또 하나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싶어요. 광고 들어오면 열심히 하고 영화나 드라마 들어오면 단역이든 조연이든 하고, 노래하는 진원도 되고요. 제 노래를 들으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진원’ 하면 딱 제가 떠오르는 그런 가수이자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진원이 가수로서 처음 갖는 인터뷰 시기였다. 이런 자리가 있다면 꼭 말하고 싶었던 게 있냐고 물었더니 고민을 하다가 ‘고칠게’ 표절 이야기를 꺼냈다. ‘고칠게’는 박기영의 ‘마지막 사랑’을 샘플링한 곡인데 표절이라고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면서 진원은 “‘고칠게’는 내 노래가 아닌 여러분의 노래”라고 말했다. 열려있는 마음으로 모두에게 공감을 사는 진원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진원은 되찾은 열정으로 제2막을 달려 나간다. ‘여러분의 진원’이 되는 그날까지.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