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여교사’는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순수하게 파내려 가는 이야기로, 제자 신재하는 두 여교사 효주(김하늘 분)와 혜영(유인영 분)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다. 재하 역을 맡은 배우 이원근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로 순수와 매혹을 오가며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여교사’는 앞서 영화 ‘거인’을 연출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김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이원근은 서너 신밖에 없는 대본을 보고 작품에 매료되어 오디션을 봤고, 많은 배우들 사이에서 당당히 배역을 따냈다.
“대본의 힘이 굉장히 셌어요. 캐릭터를 해석하고 감독님을 찾아 뵀는데, 처음 제게 하신 말이 ‘양말 누구 것이냐’였어요. 오디션 보는 거라 최대한 단정하게 입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셔츠는 입었는데, 단정한 양말이 없어서 대충 신었거든요.(웃음) 감독님은 왜 양말이 그거냐고 물으면서 그럼 평소엔 어떤 사람이냐며 이야기를 하셨어요. 제가 이 캐릭터를 얼마나 이해하느냐보다는 저와 재하가 얼마나 닮았는지 보신 것 같아요. 제 감성이나 성향, 슬픔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어요.”
재하는 처음에 순수한 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악한 아이다. 하지만 또 마지막엔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재하는 이 영화의 최대 변수다.
“감독님은 제가 웃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웃을 때와 안 웃을 때 많이 다르대요. 혜영과의 관계를 설명해줄 때는 엄마라고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재하는 불우한 가정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본 적 없잖아요. 영화에는 설명이 안됐지만, 재하는 이전부터 혜영에게 사랑을 받고 큰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요. 처음 애틋한 보살핌을 받아 본 거예요. 그래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갓난아기처럼 엉엉 울 것이라고 하셨어요.”
감독이 이원근에게 가장 많이 요구한 것은 ‘교복 입고 나오는 성인배우’가 아니라 정말 19살의 고등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성인연기가 아닌 아이 같은 톤을 요구했고, 그래서 연기를 하다가 발음이 뭉개지는 것은 ‘OK’였고, 또박또박 말하면 ‘NG’가 났다.
“NG를 낸 적이 몇 번 있어요. 촬영할 당시 제가 25살이었는데, 성인이잖아요. 원래 제 목소리 톤이 나온다거나 성인연기를 하려고 하면 NG라고 하셨어요. 엄마에게 ‘뭐 사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애 같은 호흡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한 번은 발음이 뭉개져서 혹시나 싶어서 후시 녹음을 따로 했는데 원래 촬영본을 쓰셨더라고요.”
재하는 두 여자가 갈구하는 소년이다. 관객을 설득을 하기 위해서 이원근은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을 표현해야 했다.
“덜 큰 동물 정도로 봤어요. 늑대가 다 크면 멋있는데, 크기 전엔 그 중간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스킨십을 할 때도 폭발하는 것도 아니면서 폭발하지 않는 것도 아닌, 중간 감정을 드러냈죠. 처음엔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할 때도 있었는데, 감정을 다 보여주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뭐 먹고 싶어’처럼 의사전달이 아니라 ‘먹을까 말까’ 고민해야 했죠. 감독님이 감정적으로 정말 섬세하시고 리얼리티를 추구하시는 구나 느꼈어요.”
특히 재하는 계급의 상하 관계에 있는 두 사람, 효주와 혜영을 오간다. 그런 두 사람 모두 갖고 싶어 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재하다. 정규직 자리는 혜영만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재하만은 효주에게도 기회를 준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감정의 줄타기를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주인만 보는 강아지 같은 캐릭터예요. 하지만 연애 감정이 아니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감정이었어요. 평소엔 엄마가 좋더라도 뭐 사줄 때는 아빠가 좋은 그런 기분 말이에요.”
‘여교사’는 남들이 보기엔 동료인 두 사람이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혜영과 가진 게 없어 질투와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효주의 파국,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든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이원근에게 ‘열등감’과 ‘질투’는 어떤 요소일까.
“열등감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생각해요. 열등감이라는 원 안에 갇히면 못 빠져나오니까요. ‘나도 좋은 옷을 입고 싶은데, 너는 입고 있네’라는 생각을 해버리면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가게 돼요. ‘난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살면서 질투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질투를 하면 오히려 활력이 얻어지거든요. ‘쟤도 했는데 나는 왜 못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평소에도 좋은 말씀이든 쓴 소리든 다 받아들이는데, 쓴 소리가 더 좋아요. 좋은 말만 해주면 전 아직 배울게 많은데 이게 끝인가 싶거든요. 다들 각자의 스타일이 있겠지만, 만약 그런 것들이 없다면 안주하게 되고 성장이 더딜 것 같아요.”
‘여교사’는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데서 훌륭한 작품이지만, 윤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이보다 ‘문제작’은 없다. 개봉 이후 분명히 논란이 될 이 영화에 대해 이원근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했다.
“우리 영화에 대해 편견이 있는 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학생과 선생님이라는 구도 때문에 현실에서 일어나면 큰일 날 법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 설정은 상황일 뿐이고, 열등감 혹은 질투심이 극단에 이르면 어떤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인가라는 메시지가 있어요. 그런 시각으로 보시면 영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견이 있는 상태에서 보더라도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을 안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