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영화] ‘민감한’ 영화?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문화는 자유로울 수 있다

출처 :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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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예술과 문화는 ‘자유로움’의 상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문화는 자유를 도난당했다. 영화계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부산국제영화제도, 청룡상영화제도 누군가가 억지를 썼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9437명의 문화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 배후에는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개입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7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 했다는 혐의로 특검에 출석했다. 앞서 특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따라 일부 문화예술 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을 구속했다.

지난 17일 오후 방송된 MBC ‘PD수첩’에서는 국정원이 출판진흥원 이사 선임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기도 했다. 출판진흥원 이사 선임은 출판계의 추천을 받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데 국정원에서 출판사를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통화 등으로 이사 후보들의 정치적 성향, 가족관계, 과거 이력 등을 검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출판사 문학동네, 천년의시작 등이 피해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영화계는 제작ㆍ배급 문제로 이어졌다. 지난 1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CJ그룹 손경식 회장을 지난 2014년 11월 27일 삼청동 안가로 불러 CJ그룹의 영화와 방송 사업이 ‘좌편향’ 됐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이에 손 회장은 “CJ그룹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아니지만, 영화예술인들 사이에 그런 성향을 가진 이들이 많아 이번에 정리를 했다”며 “앞으로는 방향이 바뀌게 될 것이다. CJ는 ‘명량’과 같은 국익을 위한 영화도 만들고 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좌편향’ 됐다고 언급한 영화는 ‘변호인’과 ‘광해’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유진룡 전 장관은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김기춘 전 실장이 ‘변호인’을 비롯해서 그런 영화들을 만드는 회사를 왜 제재하지 않느냐고 했다”며 “김기춘 실장이 혀를 쯧쯧 차고 굉장히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외교관은 “외국인이나 교민에게 영화를 상영할 때, ‘변호인’ ‘광해’ ‘천안함 프로젝트’ 이런 종류의 영화는 보여주지 말라고 지침이 내려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변호인’은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다뤘으며, ‘광해’는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후 CJ는 애국 영화로 알려져 있는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을 배급했는데, 특검팀은 앞선 일들이 이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보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은 평론가들에게 ‘국뽕영화’라고 혹평 하기도 했다. 여기에 ‘인천상륙작전’은 KBS의 투자 및 노골적인 광고로 욕을 먹었지만, 흥행에 성공했다. ‘국제시장’에는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군사정권은 접어두고 우리네 아버지 세대들의 희생을 보여줌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출처 :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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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영화계는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와 미래를 향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예정이다. 앞으로 개봉할 작품 중 지켜봐야 할 작품은 ‘택시운전사’ ‘군함도’ ‘1987’ 등이 있다.

특히 ‘택시운전사’(배급 쇼박스)는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광주민주화운동 취재에 나선 독일기자를 우연히 태워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송강호가 택시운전사, 토마스 크레취만이 독일기자 역을 맡았다. 앞서 장훈 감독은 ‘고지전’에서 6ㆍ25전쟁을 다뤘는데, 전쟁을 이념 갈등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는 ‘인천상륙작전’과 달리, 이념을 잘 몰랐지만 전쟁에 나서야 했던 일반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한국전쟁영화의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때문에 장훈 감독의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에 대한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CJ 역시 역사를 통해 현실을 이야기 할 예정이다.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시작으로 6월항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이야기를 담는다. 배우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이 출연하고, 독특한 SF스릴러였던 ‘지구를 지켜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등으로 인정받은 장준환 감독의 작품이다.

여름에 배급될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400여 명 조선인들의 이야기로,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다. 현재 위안부 소녀상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또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가장 치욕스러웠던 시대를 직접 다룬 ‘군함도’에서 류승완 감독이 어떻게 깊게 파고들었을 지가 최대 관건이다.

큰 배급사들이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것 역시 큰 역할을 해주는 것이지만,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작은영화들의 배급 문제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갈등의 시발점이 됐던, 세월호를 다룬 ‘다이빙벨’을 포함해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자백’ 등이 ‘눈치’를 보지 않고 정상적으로 배급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앞서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배급을 맡은 고영재 PD는 멀티플렉스 배급 전략에 대해 “민감한 영화는 전화가 온다. 최승호 PD가 만든 ‘자백’도 알게 모르게 받았다고 확신하고 있다. CJ 부회장도 정권의 한마디에 쫓겨날 수 있는데, 영화 하나 틀지 말라는 압력은 얼마나 쉽겠나”라며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시사회에 멀티플렉스 관계자들이 우리 영화를 보러 왔다는 것이다. 박근헤-최순실 게이트 이후 과거에 비해 압력을 덜 받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